안상철 KIST 영상미디어센터장 "목격자 진술로 3D 몽타주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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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프런티어A씨가 골프 연습을 위해 스크린골프장 대신 찾은 곳은 거실의 스마트TV 앞. 손목과 드라이버에 작은 센서를 부착하고 클럽을 힘차게 휘두르자 TV화면에 스윙 동작에 대한 평가가 실시간으로 뜬다. ‘코킹 평가’는 100점 만점에 63점, A씨가 밟고 선 압력 감지 매트로 잰 ‘왼발 체중 이동 평가’는 78점. ‘코킹 풀림을 최소화하고 반스윙 연습으로 리듬감을 찾으라’는 전문가 조언도 함께 나온다. A씨는 TV카메라에 찍혀 3차원(3D) 모델로 만들어진 자신의 자세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연구하기도 한다.
한국서 공부한 토종과학자, 가상현실 연구 선도…골프 스윙동작 3D로 분석
미래의 가상 스포츠 체험환경을 예상한 시나리오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영상미디어연구센터는 지난해 이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실감형 스포츠 시뮬레이터’ 기술을 실제로 개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센터는 컴퓨터 기술을 통해 이용자가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가상현실’ 분야에서 앞선 연구 성과를 선보이고 있다. 안상철 KIST 영상미디어연구센터장은 “가상현실 기술의 핵심인 영상 분야의 원천기술을 개발해 미래 생활을 바꾸는 것이 센터의 목표”라고 소개했다. 안 센터장은 “가상현실의 핵심은 사용자가 실제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사용자와 빠르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정교한 가상환경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만들 수 있는 영화의 컴퓨터그래픽(CG)과 달리 가상현실 영상은 매 순간 사용자의 반응에 따라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정밀함’과 ‘상호작용 속도’를 함께 만족시키기 어렵다”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 성과를 꾸준히 내고 있다”고 말했다.
‘3D 실감 모델링’ 기술도 이 같은 연구성과 중 하나다. 글로벌프론티어 연구사업에서 개발한 이 기술을 이용하면 물체를 카메라로 찍어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3D 모델로 만들 수 있다. 유명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주인공인 ‘버즈 라이트이어’ 인형을 직접 스캔하는 장면을 시연한 안 센터장은 “비용 속도 정밀도를 모두 감안했을 때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라고 설명했다.
센터에서는 가상으로 만들어낸 모습을 현실 세계에 덧씌워 보여주는 ‘증강현실’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경복궁 앞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창덕궁과 창경궁의 조감도를 그린 문화재 ‘동궐도’에 증강현실을 적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태블릿PC를 그림에 갖다대면 카메라 각도에 따라 궁궐의 풍경을 입체로 살필 수 있고 궁궐 내 계절이 변화하는 영상도 볼 수 있다. 안 센터장은 “가상현실 기술은 사람이 직접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에서 이미 활발히 쓰이고 있다”며 “비행기 조종 교육과 의료 실습 등이 좋은 예”라고 말했다. 그는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용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며 “이제 가상현실은 붐을 넘어 교육·게임·소셜미디어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범죄 추적에까지 활용된다. 센터는 목격자 진술을 이용해 범죄자의 3D 몽타주를 얻어내는 기술을 경찰청과 협력해 개발 중이다.
KIST에서 가장 오래된 센터인 영상미디어연구센터는 1997년 생겼다. 안 센터장을 비롯해 모바일 증강현실 관련 연구를 하는 고희동 연구원, 3D 몽타주를 연구하는 김익재 연구원, 가상 스포츠를 연구하는 김진욱 연구원 등 16명의 정규 연구원이 일하고 있다. 학생과 인턴연구원까지 포함하면 70여명에 달한다.
첫해부터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한 안 센터장은 서울대에서 학부 시절부터 제어계측분야를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받은 토종 과학자다. 애플II가 갓 출시된 개인용 컴퓨터(PC) 초창기 시절부터 영상 분야에 관심을 가져 왔다는 그는 “수학 전산학 등 여러 학문과 연계돼 있어 쉽지만은 않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