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 100엔 시대] 엔低 칼춤…110엔 넘으면 철강·유화·IT 수출 10% 이상 날아가
입력
수정
비상등 켜진 수출전선엔저(低) 쓰나미가 한국 경제를 덮치고 있다. 경제계는 “우려가 현실화됐다”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10곳 중 6곳 "비상경영 플랜 가동"
경상수지 年 200억~300억달러 감소할 수도
10일 한국경제신문이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내 대기업 10곳 중 6곳은 엔저에 대응해 ‘비상 경영플랜’을 가동하거나 검토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엔·달러 환율이 100엔대를 돌파해 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소들은 달러당 100엔대에서 국내 총수출은 3.4% 감소(현대경제연구원)하고, 적자 기업 비중이 현재(33.6%)의 2배인 68.6%에 이를 것(삼성경제연구소)으로 내다봤다. ○일본·미주 수출 타격
설문에 따르면 31개 대기업은 엔저 때문에 가장 우려되는 것으로 수출 감소(83.8%)를 꼽았다. 원자재와 부품 확보(6.5%), 내수 부진(6.5%)이 다음이었다. ‘환차손’이라는 답변은 3.2%에 불과해 주요 기업들이 환율 변동과 관련된 리스크 헤징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엔저로 어느 지역의 수출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일본(37.6%)과 미주(28.1%) 동남아(24.9%) 중국(6.3%) 유럽(3.1%) 등의 순이라고 답했다. 또 응답 기업의 12.1%는 이미 엔저 때문에 비상 경영에 들어간 상태라고 전했다. 조만간 비상 경영플랜을 시행할 곳은 3.2%였으며 검토하고 있는 곳은 45.3%나 됐다. ‘계획 없다’는 39.4%였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 속에서 엔화가치만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어 한국 수출기업들이 체감하는 충격은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설문 기업들이 당초 예상한 올해 엔·달러 평균 환율은 86.6엔이었다. 전자업종의 기업들은 99.5엔이라고 답해 엔저에 대한 준비가 돼 있었지만 자동차는 79.4엔에 불과했다. 철강은 84.9엔, 유화는 83엔이었다.
○경상수지 수백억달러 감소할 수도 이들 기업의 응답처럼 엔저로 인해 수출이 급감하면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올해 수출의 순성장 기여도 예상치는 1.4%포인트로 올 성장률 전망치(2.6%)의 54%에 달한다.
이미 지난달부터 수출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하루 평균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7.9% 감소해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선박 철강 자동차 등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주력제품의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역별로도 엔저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은 대일 수출은 11.1%나 감소해 3개월 연속 줄었다. 중소기업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수출 중소기업의 원·엔 환율 손익분기점은 1343원으로, 이미 적잖은 손실을 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0일 현재 원·엔 환율은 1095원15전을 기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엔·달러 환율이 100엔을 넘으면 한국 총수출이 3.4%, 110엔을 웃돌면 11.4% 각각 급감할 것으로 추산했다. 110엔대 환율에선 철강(-16.2%) 석유화학(-14.0%) 기계(-11.7%) 정보기술(IT·-11.8%) 등의 수출이 10% 이상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상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상품수지 악화뿐 아니라 일본인 입국자 수 급감에 따른 서비스수지까지 적자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원고까지 겹쳐 원·엔 환율이 1100원 선 아래에 머물 경우 연간 200억~300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요인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 교수는 “글로벌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무작정 국내로 들어오지 않도록 자본유입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기업 차원에서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고 상품 품질을 높이는 등 비가격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긴급 설문에 응한 대기업들은 토빈세(금융거래세) 등 환율방어 장치와 경제민주화 정책 완화 등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정환/고은이/서욱진/김대훈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