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과열 입 연 버냉키 "고위험 투자 예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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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자산 쏠림 경고1996년 12월5일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은 한 연설에서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말로 당시 증시 상황을 표현했다. 다우존스지수가 10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지 한 달이 조금 안 된 시점이었다. 그의 발언 이후 뉴욕 증시는 큰 폭의 조정을 받았고 ‘비이성적 과열’은 그린스펀이 만들어낸 가장 유명한 경제 용어로 자리 잡았다.
美주식·정크본드 투자 몰려 자산가격에 악영향 줄 수도
비이성적 과열?
다우 최고치 행진에 거품 우려…최근 그린스펀은 "아직 저평가"
그로부터 16년4개월 만인 지난 3월, 다우지수가 다시 10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장의 관심은 자연스레 벤 버냉키 현 Fed 의장의 입에 쏠렸다. 그리고 두 달 만인 지난 10일, 결국 그도 그린스펀 전 의장의 전철을 밟았다. 이날 시카고 Fed가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버냉키 의장은 “저금리 상황에서 고수익을 좇기 위한 투자자들의 과도한 위험 감수 성향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는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과 경제의 기초 체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Fed의 3차 양적완화에 이어 일본은행도 무제한 금융완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글로벌 투자자금이 미국의 주식과 정크본드 등 위험자산으로 몰려들고 있다. 다우지수와 S&P500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고 투기등급 이하 회사채인 정크본드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정크본드의 평균금리가 지난 8일 사상 최저 수준인 4.97%까지 떨어졌다. 2007년 중반 미 국채 10년물 금리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미국 농지에도 돈이 몰리면서 작년 한 해 캔자스의 농지 매매가가 30%나 급등하기도 했다.다만 버냉키 의장은 “위험 감수 자체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채권 금리를 낮춰 투자자들이 주식 등 위험자산으로 옮겨가도록 하는 것이 Fed가 시행하고 있는 3차 양적완화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Fed는 작년 9월부터 매달 850억달러어치의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사들여 장기 금리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레버리지 투자나 만기 불일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버냉키 의장은 특히 “자산 가격의 급격한 변동이 전체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당시에는 손실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아 금융 시스템에 타격을 주지 않았지만 2007년에는 부실 모기지대출이 대형 은행에 집중돼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현재 제로 수준인 금리가 갑자기 인상되면 대형 은행들이 또 한 번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경고다. 한편 그린스펀 전 의장은 지난 3월 “현재 상황은 비이성적 과열이 아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오히려 미국 증시는 아직 저평가된 상태”라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노경목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