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언덕 위의 구름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1923~1996)는 일본에서 국민 작가로 추앙받는 역사 소설가다. 본명은 후쿠다 데이이치(福田定一)이지만 중국 사가 사마천(司馬遷)의 정신을 배운다며 필명을 시바로 했다. 극우민족주의 편향 보도로 유명한 산케이신문의 일선 기자로 활약하다 1970년부터 소설가로 전업했다. 메이지 유신을 배경으로 일본 근대화 작업에 기여한 인물들을 묘사하는 작품을 주로 썼다.

그를 기념해 매년 신진 작가를 선발하는 시바 료타로 상(賞)이 있으며 시바 료타로기념관도 오사카에 건립돼 있다. 시바 료타로라는 월간지가 나올 만큼 그의 인기는 일본에서 대단하다. 그의 애독자들은 사실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독특하고 감동적인 역사관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객관적 분석이 결여돼 있고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등 그의 작품엔 문제가 많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은 그런 논쟁의 한복판에 있는 역사소설이다. 이 책은 시바가 1968년부터 1972년에 걸쳐 산케이신문에 연재한 대표 장편이다. 일본에서만 무려 2000만권 이상이 팔릴 만큼 초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던 책이다. 러일전쟁에서 핵심참모로 일한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 기병대에서 활동한 그의 형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 그리고 일본 하이쿠의 중흥을 이끈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등 고향이 같은 세 젊은이의 활약상을 그렸다. 하지만 메이지 시대를 미화하고 러일전쟁을 자위 전쟁으로 보는 극우 사관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다.

그는 이 내용이 모두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뒀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들어 창작하거나 사실을 왜곡한 부분도 드러나고 있다.

시바 료타로는 이 작품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사후 그의 부인 미도리 여사의 승낙을 받아 NHK방송이 드라마로 제작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마쓰야마 시에 ‘언덕 위의 구름 박물관’도 세워졌다. 국내에서도 이 소설이 1990년대 초에 번역돼 일부 기업에서 신입사원 연수용 교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 경영자들이 뽑은 베스트 비즈니스 책에 ‘언덕 위의 구름’이 1위로 꼽혔다고 한다. 베스트셀러는 시대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원래 비즈니스 책은 아니지만 일본 기업의 여건에서 보면 이런 위기 돌파서가 필요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자칫 국수주의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일본의 뒷모습을 보여준다는 측면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역사 드라마는 아예 희극으로 치닫고 있다고 하지만 시바 료타로를 정점으로 하는 일본 문학의 극우적 성향도 어지간하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