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부부채 50조 달러] 빚으로 빚갚는 시스템 한계…세계 장기 인플레 가능성

오름세 타는 美·日 국채 금리

중앙은행들 돈 찍어 국채 매입
국채 금리 급등땐 재앙 불보듯
미국의 대학 기금펀드는 ‘가장 똑똑한 투자자(the smartest money)’로 불린다. 하버드대의 기금펀드 매니저가 대학 총장보다 40배 많은 급여를 받는 데서 알 수 있듯 낮은 리스크로 높은 수익을 내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다. 이런 대학 펀드들이 2010년 이후 미국 국채를 팔기 시작했다. 2009년 말까지만 해도 전체 자산의 30% 정도는 국채에 묻어뒀지만 이 비율이 최근 5%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국 국채를 더 이상 안전자산으로 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 해당 펀드매니저들의 얘기다. 투자 동향에 가장 민감한 미국 대학 펀드들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시장을 빠져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빚으로 빚을 되갚는 선진국의 부채 조달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을지 모른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중앙은행 매입에도 떨어지는 국채값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앙은행들이 돈을 찍어내 그동안 국채 금리를 억지로 낮게 유지해 왔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3월 1년 만에 연 2%를 넘어선 뒤 이달 20일엔 연 1.97%에 마감했다. 일본 국채 10년물 역시 아베 신조 총리의 무차별 양적완화에도 4월4일 연 0.42%에서 지난 15일 장중 연 0.92%까지 급등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볼 땐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각국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국채를 사들이고 있음에도 국채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간단치 않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무제한 양적완화와 유럽중앙은행(ECB)의 무제한 국채매입프로그램(OMT) 등은 모두 국채를 매입해 시장에 돈을 푸는 방법이다. 아베노믹스의 핵심도 일본은행의 일본 국채 매입에 있다. 이 과정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국채 규모도 늘어 Fed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2007년 말 이후 2.4배 팽창했으며 ECB는 6.3배 늘었다. 미국의 경우 2007년 이후 늘어난 국채의 15% 이상을 중앙은행이 매입했다. ◆국채시장 붕괴 따른 파국 오나

이는 그만큼 민간의 국채 수요가 줄고 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린 돈의 힘으로 치솟은 선진국 국채값이 언제든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국채 매입을 줄이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당장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기관투자가들도 자국 국채 보유 비중을 줄이고 있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공적연금(GPIF)의 미타니 다카히로 이사장은 2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국채 보유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레베카 넬슨 코넬대 교수는 “국채는 흔히 안전자산으로 분류하지만 개인 부채와 달리 자산 담보가 없고 발행한 국가가 안 갚겠다고 하면 처리해줄 법적 근거도 없다”며 “어느 시점에 투자자의 신뢰가 무너지면 가격이 곤두박질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채값 하락(국채 금리 상승)은 이미 민간 금융사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미쓰비시UFJ은행은 올 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순이익이 10.8%, 미즈호은행은 10%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종착지는 장기 인플레이션?

더 큰 문제는 각국 정부의 이자 상환 부담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국채 만기가 돌아오면 다시 국채를 찍어서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 찍은 국채값이 더 낮으면 그만큼 이자가 늘어난다. 미국의 국채 이자비용 지출은 2010년 이미 국방부를 제외한 개별 부처의 연간 예산을 넘어섰다. 이자는 불어나는 가운데 국채시장을 통해 추가로 빚을 얻기 어려워지면 각국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국제결제은행(BIS)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국채를 상환하는 것 이 외에 방법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시중에 돈이 풀리며 인플레이션을 낳겠지만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릴 수도 없다. 금리가 올라가면 국채값은 더 떨어지면서 정부를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까지 내몰 수 있어서다. BIS는 “막대한 정부 부채는 장기적으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도 제한할 것”이라며 “장기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노경목/이미아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