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의회 권력] 근로환경 뒤흔들 '정년 연장법' 공청회 없이 71분만에 '뚝딱'

(1) 쏟아지는 졸속 입법

19대 접수법안 4544건 중 공청회 거친건 15건 불과
유해화학물질 규제법 논의 시간은 고작 172분
국회는 지난달 30일 근로자 정년을 3~4년 뒤부터 60세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6년에는 300인 이상 사업장, 2017년에는 국내 모든 사업장이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기업을 포함한 모든 법인 사업자의 고용·임금 체계는 물론, 상용근로자 1162만명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법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법을 국회는 어떤 과정을 거쳐 통과시켰을까.

국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졸속’이란 평가가 딱 어울린다. 정년연장법이 국회에 처음 발의된 것은 작년 7~8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목희·홍영표(이상 민주당)·김성태·정우택·이완영(이상 새누리당) 등 5명의 의원이 ‘정년 60세 연장’을 골자로 한 유사법안을 발의했다.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를 거친 이 법안은 그해 11월21일 또 한번 환노위 논의를 거쳤다. 이때까지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년연장과 관련해 경제계 등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도 한번 열지 않았다. 이 법안이 다시 논의된 건 넉 달 만인 4월22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다. 당시만 해도 도입 시기와 관련해 여야 간 이견이 컸다. 경제계도 “신중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 그런데 4월22일 법안심사소위에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년연장법안을 전격적으로 처리했다. 당시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이다. 여야는 구체적 근거도 없이 도입 시기를 논의한다.

▷김성태(법안심사소위 위원장) “시행 시기를 논의해주세요. 2015년 1월1일이면 저는 뭐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홍영표 “아니 2015년 해서 (유예기간을)1년 반….” ▷김성태 “2015년 7월1일로 할까요?”

▷이종훈 “2015년 1월1일로 하면 (기업들이) 당장 내년에는 전혀 신규채용 계획을 안 세웁니다. 한 2년은 줘야 돼요.”

▷김성태 “그래서 2015년으로 해서 1년 반….” ▷이종훈 “아니 그게 아니라 하려면 1월1일부터 해야 돼요.”

▷한정애 “2016년 1월1일이요?”

▷이종훈 “예” ‘2016년 일괄 시행’ 쪽으로 의견을 모으던 여야는 갑자기 ‘사업장 규모에 따라 도입 시기를 달리해야 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이종훈 “정 그러면 한 1년만 크게 두 그룹 정도로 해서 나누든지요.…”

▷한정애 “100인 이상과 100인 미만 정도로….” (중략)

▷이종훈 “그러면 300인 이상은 2016년 1월1일로 하고, 300인 미만은 2017년 1월1일로 하고 그 정도 할까요. 그래도 굳이 차별을 안 두면 섭섭해한다고 할까, 좀 불안해한다니까….”(중략)

▷정현옥 고용노동부 차관 “그래도 한번에 전면 적용하기보다는 최소한 한 단계 정도는 두셔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언론에서나 국민들이 볼 때 정서적으로 동시에 원샷은 안 맞거든요.”

▷김성태 “그러면 정리하겠습니다. 2016년 1월1일은 300인 이상, 2017년 1월1일은 300인 미만 전 사업장 그렇게 하지요. 자, 이의 없습니까?”

▷의원들 “예”

정년연장 도입 시기는 이렇게 2016·2017년으로 결정됐다. 오후 3시46분에 시작한 논의는 오후 4시40분께(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포함한 총 논의시간은 71분)끝났다. 법안 처리에 한 시간도 안 걸린 셈이다. 임금피크제 의무화 등 정년연장에 따른 해결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도 태부족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에 뿌리내린 노사 간 관행과 제도를 바꾸는 것은 나라를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렵다”며 “업종별 협의를 거쳐 장기간 추진해야 할 문제를 하루아침에 처리하는 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법안을 졸속 처리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발의하는 대다수 법안이 연구용역, 공청회 등을 거치지 않은 데다 규제심사도 없이 처리되고 있다. 19대 국회에 제출된 의원입법안 4544건 중 공청회를 거친 법안은 15건(0.3%)에 불과했다. “평소 의원들이 각계 의견을 수렴한다”는 반론을 감안하더라도 ‘허술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허술한 심사를 하다 보니 부실한 법안 처리가 반복된다. 지난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이 그런 사례다. 이 법은 환노위 소속 한정애 의원(민주당)이 대표 발의했다.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낸 기업에 매출액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게 골자다. 4월5일 법안이 처음 발의됐을 때 과징금 규모는 매출액의 50% 이상이었다. 왜 매출액의 50%를 과징금으로 매기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후 4월23일 법안심사소위에서 과징금 규모는 ‘매출액의 50% 이하’로, 다음날인 4월24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선 ‘매출액의 10%’로 조정됐다. 4월24일 환노위 전체회의 논의 과정이다.

▷한정애 “지금 영업정지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최고) 6개월입니다.…그래서 2분의 1(50%)이라는 숫자가 나왔을 수 있는데요.…”(발의자가 처음으로 왜 매출의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을 냈는지 이유를 밝힌 대목이다.)

▷김성태 “매출액의 2분의 1이라니까 기업들이 오해를 하기 시작했어요.…잠깐 보류하고 다시 간사 간에 좀 협의해 가지고 타당한 처리를 했으면 합니다.”

▷신계륜(환노위원장) “그러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표결해도 괜찮아요. 100분의 10이면 괜찮겠습니까?”

▷김성태 “그렇게 받아들이시죠.”

▷한정애 “예. 그렇게 오해를 살 수 있다면 받을 수 있다고 보는데요.…”

환노위는 이날 회의에서 과징금을 매출액의 10%로 줄여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법사위(5월6일)에선 다시 과징금을 매출의 5%로 줄였다. 회의록을 보면 환노위와 법사위에서 여야 의원이나 소관부처인 환경부는 과징금 부과 근거가 될 수 있는 어떤 자료도 내놓지 않았다. 단지 ‘몇 %를 부과할 것이냐’만을 두고 베팅하듯 결정했다. 이 법 내용을 환노위와 법사위에서 논의한 시간은 172분(2시간52분)이었다.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처리 과정을 보면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시간에 통과됐다”며 “과도한 과징금 부과 권한을 정부에 주는 것인데, 이런 식이면 겁이 나서 누가 기업하겠나”라고 꼬집었다.

◆특별취재팀 : 산업부 이건호(팀장)·이태명·정인설 기자, 정치부 김재후·이호기·이태훈 기자, 경제부 김주완 기자, 지식사회부 양병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