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안가고 '나홀로 취업준비'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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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그림자…부모한테 손 벌릴 염치 없고서울에 있는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김모씨(26·여). ‘괜찮은 직장에 못갈 바에는 차라리 쉬는 게 낫다’는 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2년째 공기업과 대기업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은퇴한 부모님에게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하기 힘든 눈치다. 김씨는 최근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각종 스터디 모임을 시작했다. 그는 “주변에도 비용을 아끼고자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서 공부하는 ‘취업 장수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8월 이후 계속 늘어 2월부터 40만명 넘어
김씨처럼 교육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홀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취업 관련 학원에 다니지 않는 취업 준비자는 42만4000명에 달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1월 이후 최대치다. 지난달은 40만9000명을 기록, 3월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지난달 61만2000명의 취업 준비자(실업자는 82만5000명) 중 나홀로 취업 준비자가 67%에 이른 것이다. 나홀로 취업 준비자는 2008년 이전 매년 20만명대에 머물렀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취업 여건이 열악해진 2008년 30만명대로 늘어났다. 이후 올 2월부터 40만명을 넘어선 뒤 좀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는 전년 동월 대비 9개월 연속 늘었다.
취업 준비자는 일할 의사는 있지만 지난 한 달간 구직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다. 취업과 관련된 교육기관을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과 혼자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최근에는 부모의 은퇴 시기와 겹쳐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등 불황에 취업 준비 비용을 한푼이라도 아껴보자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나홀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불황으로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아 아예 입사 지원서를 넣지 않고 스펙만 쌓는 취업 장수생이 늘어났다”며 “20~30대 일자리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수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취업 준비자 가운데는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고학력자도 상당수다. 경기가 활력을 찾지 못하면서 괜찮은 일자리가 나오지 않아 이들이 중소기업에 가는 대신 취업 준비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통계적으로 나홀로 취업 준비자 수는 경기가 하강 국면을 지속할 때 빠르게 늘어난다”며 “양적으로는 일자리가 늘고 있을지 몰라도 질적 측면에서 봤을 때 청년층이 느끼는 취업난은 여전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청년층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도 취업 준비자가 늘어나는 데 한몫했다. 우리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취업 준비자는 20~30대가 대부분(89%)을 차지하고 있는데 20대 취업자 수는 2008년 389만4000명에서 꾸준히 줄어 지난해에는 361만2000명을 기록했다.
문제는 가장 혈기 왕성한 나이인 20~30대 노동자들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데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석·박사 학위를 가진 고학력자도 좋은 일자리를 위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