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 핑퐁게임에 갈곳 잃은 '결핵노숙인'

서울시, 국가부담금 3억 미집행
이수범 미소꿈터 사무국장이 서울시청 앞에서 미소꿈터에 대한 예산집행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이번주가 마지막입니다. 결핵과 싸우는 노숙인들이 다시 거리로 내몰린다고 생각하면 밤에 잠이 오질 않아요.” 지난 26일 오전 서울 한강대로에 있는 미소꿈터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광 신부가 호소했다. 박 신부는 지난 1월부터 미소꿈터 소장을 맡고 있다.

대한성공회가 노숙인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질병관리본부의 위탁을 받아 2011년 10월 마련한 미소꿈터는 국내 최초 노숙인 결핵치료 시설이다. 지난 1년 7개월 동안 미소꿈터를 찾은 노숙인 79명 중 50명이 완치돼서 퇴소했고 현재 23명이 입소한 상태지만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있다. 지난해까지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예산 전액을 지원 받았지만 올해는 연간 예산 6억원을 질병관리본부와 서울시가 절반씩 부담하게 됐다. 하지만 서울시와 질병관리본부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올해 예산은 전혀 집행되지 않았다.
미소꿈터에 머물며 결핵을 치료하고 있는 입소자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월 국가부담금 3억원을 서울시로 보냈지만 서울시는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예산 분담을 확정해 예산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미소꿈터에 예산을 보내지 않고 있다. 임창윤 서울시 보건정책팀장은 “예산 분담 계획을 지난해 9월 통보 받았지만 당시 미소꿈터는 결핵요양시설로 허가 받지 못한 상태였다”며 “미인가 시설에 시 예산을 투입할 근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미소꿈터는 서울시가 2013년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용산구청에서 결핵요양시설 인가를 받았다. 반면 고은영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장은 “처음에는 건물을 마련하고 리모델링을 하느라 국비 만으로 사업을 진행했었다”며 “미소꿈터는 사회복지시설인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함께 투입하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양 기관이 맞서면서 질병관리본부가 서울시로 보낸 예산 3억원도 공중에 붕 뜬 상태다. 서울시 측은 “3억원이라도 먼저 집행하려 했지만 질병관리본부에서 ‘서울시 예산을 합친 뒤 집행하자’며 반대했다”는 입장인 반면 질병관리본부 측은 “이미 배정된 국가보조금을 먼저 집행할 지 여부는 전적으로 서울시의 권한”이라고 맞섰다.

지난달 말까지 대한결핵협회가 2억7000여만원, 대한성공회가 3000만원을 각각 빌려줘서 간신히 버티던 미소꿈터는 양 기관의 갈등이 깊어지는 사이 노숙인들의 식재료 값도 없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수범 미소꿈터 사무국장은 “서울시가 예산 3억원만 집행해 줬어도 이 지경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 2월부터 미소꿈터에 머물고 있는 노숙인 A씨(45)는 “이제 2달만 더 투약하면 완치될 수 있는데 문을 닫을까봐 겁난다”며 한숨을 쉬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