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덜난 경제·이슬람式 통치·독재 답습…성난 민심에 결국 쫓겨나

이집트 군부, 무르시 1년 만에 축출…'아랍의 봄'으로 물러난 5번째 통치자

심각한 경제난
지난해 성장률 2%대로 급락…실업 늘고 관광수입마저 '뚝'

무슬림형제단 저항이 변수
무르시 지지자 "쿠데타" 반발…군부와 충돌땐 내전 번질수도
이집트 카이로대 거리에 모인 반정부 시위대가 3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축출 소식을 접한 뒤 환호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최후통첩 시간이 지난 지 네 시간 만에 무르시의 권한을 박탈하고 카이로 등 주요 거점도시에 탱크와 군인을 배치했다. 카이로AFP연합뉴스
‘아랍의 봄’에서 ‘아랍의 겨울’로.

2년 전 ‘아랍의 봄’을 이끈 이집트 민주 정권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경제개혁 실패와 이슬람식 통치 강화로 국민과 불화를 빚은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이를 지지하는 군부의 개입으로 집권 1년 만에 권좌에서 쫓겨났다. 앞서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3일 오후 9시(현지시간) 국영TV 생중계 연설을 통해 “현행 헌법 효력을 중지시키고 조기 대선과 총선을 치르겠다”며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대통령을 축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일. 무르시는 튀니지, 예멘 등 중동·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다섯 번째 통치자가 됐다. 무르시 대통령은 현재 카이로의 국방부에 억류돼 있다.

이집트 군부는 야권과 협의해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다시 치르기로 했다. 또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 소장을 과도 기간의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 취임식을 열었다. ○경제와 종교, 풀지 못한 숙제 이집트 사태의 이면에는 경제난이 자리하고 있다. 이집트는 최근 20여년간 최악의 경제 상황에 놓였다.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 경제는 거의 반 토막이 났다. 2011년 1월 360억달러의 외화보유액은 2년이 지난 올 1월 130억달러로 크게 줄었다. 화폐가치는 약 14% 떨어졌다. 정부 보조금이 줄면서 연료 가격마저 폭등했다. 관광 수입도 줄었다.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하던 관광 수입은 현재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집트의 연간 GDP 증가율은 2008년 7%대에서 지난해 2%대로 급락했다. 실업률은 13.2%로 2010년 이후 100만명 이상이 실직했다.

이런 가운데 시위대에 불을 지핀 건 독재를 답습한 무르시의 리더십이다. 무르시 정부는 경제 개혁은 미루면서 이슬람 정치 규범을 강요했다. 무르시는 야권의 다수가 세속주의, 자유주의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한 ‘헌법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잦은 충돌을 빚었다. 무바라크의 ‘현대판 파라오’라는 별명까지 물려받았다. 취임 100일 후 지지율은 78%에서 32%로 급락했다. 과거 회귀의 두려움을 느낀 자유주의자들은 무바라크를 쫓아낸 그 광장에 다시 모여 ‘퇴진’을 외치게 된 것.

◆예상되는 3대 시나리오 이제 이집트의 차기 수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력한 인물로는 무르시 축출의 일등공신인 압델 파타 엘 시시 국방장관(58), 야권 지도자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71), 무바라크 정권 마지막 총리였던 아흐마드 샤피크(71) 등이 꼽힌다.

이집트 정국의 열쇠는 군부가 쥐고 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집트 군부 주도 아래 국가통합위원회를 구성, 조기에 선거를 통해 민간에 정치권력을 이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군부가 과도하게 개입해 ‘군부 정권으로 회귀’를 꾀한다면 야권과 시민사회 단체가 강력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변수는 무르시의 최대 지지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다. 무슬림형제단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저항 집회를 멈추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집트 군부는 무슬림형제단을 새 정권 창출의 최대 걸림돌로 보고 현재 이 조직의 간부 300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만약 무슬림형제단이 지하조직을 동원, 테러를 감행할 경우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져 내전 양상으로 비화할 수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제3세력의 등장이다. 유력한 대안 세력은 시민혁명으로 물러난 무바라크 측근 세력. 이집트 세속주의자들과 기독교인 사이에서는 무바라크 측근이자 총리 출신인 샤피크의 복귀를 바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무르시가 지난 대선 결선투표에서 51.73%로 승리할 당시 샤피크는 48.27%를 얻었다. 하지만 자유민주 선거로 선출한 대통령을 부인하고 또다시 독재 정권의 복귀를 반기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 무슬림형제단

이집트 이슬람학자인 하산 알 반나가 1928년 이슬람 가치 구현과 확산을 목표로 설립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 폭력 노선 대신 병원과 학교 건설 등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통해 아랍권에서 폭넓은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1954년 가말 압둘 나세르 전 대통령 암살 시도의 배후로 주목되는 등 이집트 군부와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