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윔블던 코트' 냐

삼성전자 사상최대 실적에도 외국인 연일 매도 스매싱
IT부품株 실적 상관없이 하락

외국인 비중 40%로 '입김' 세져…헤지펀드 '놀이터' 되기 쉬워
과실 못 누린 '주객전도' 장세
국내 증시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입김’에 힘없이 밀리고 있다. 외국인들이 국내 상장사 시가총액의 20%, 순이익의 10%가량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에 대해 매도 공세를 멈추지 않으면서 2000을 넘나들던 코스피지수는 1830 수준에 묶였다. 외국인들이 정보기술(IT)주에 대해 매도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IT주 전반이 하락세다. 외국인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내 시장에서 외국 기업보다 자국 기업의 활동이 부진한 현상을 지칭하는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가 한층 거세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해지는 ‘윔블던 효과’9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1013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닷새째 ‘팔자’를 이어갔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0.74% 오른 1830.35에 거래를 마쳤다. 닛케이225지수가 2.6% 급등하는 등 강세를 보인 것과 달리 외국인 매도 공세 탓에 한국 증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외국인은 올 들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인 10조70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지난 6월에는 전체 순매도 금액의 절반 가까운 5조1470억원을 팔아치웠다. 이에 따라 상반기 코스피지수는 6.70% 하락했고, 외국인 매도세가 본격화한 6월 이후론 낙폭이 커져 한 달 새 8.53% 급락했다. 외국인이 3조5358억원어치나 순매도한 전기전자 업종 종목은 실적에 관계없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올 들어 외국인이 많이 판 삼성전자(5조1260억원 순매도)는 18.73% 주가가 빠졌다. 한국전력(6114억원 순매도·-11.49%), LG화학(6018억원 순매도·-21.97%), 이마트(4908억원 순매도·-11.13%) 등 업종 대표종목들도 맥을 못췄다.

이 같은 현상은 7월에도 이어지고 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7월 외국인 순매도 상위종목을 떠안은 개인은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이 모두 하락했다. 삼성전자(-8.64%), 현대모비스(-6.96%) 등 개인 순매수 상위종목 대다수는 7월 들어서만 5~10%대 손실을 봤다. 반면 외국인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중 5개 종목이 상승했고, 셀트리온(14.95%), LG유플러스(6.28%), 엔씨소프트(7.10%) 등에선 5%대 이상의 재미를 봤다. ○거래대금 외국인 비중 40%대로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의 영향력 확대는 여러 지표에서 확인된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20~27% 선을 오갔던 거래대금 중 외국인이 차지한 비중은 지난 5월 30%대로 뛰었고, 이달 5일에는 40.4%까지 치솟았다. 올 들어 줄곳 0.65~0.67 사이를 오갔던 코스피지수와 외국인 순매수 간 상관관계(1에 가까울수록 같이 움직인다는 뜻)도 6월20일 이후엔 0.68~0.69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만큼 증시에서 외국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 매매 동향과 코스피지수 그래프가 올 들어 거의 같은 모양을 그릴 정도로 코스피지수와 외국인 투자패턴이 동조화됐다”며 “한국 증시는 삼성전자 의존도가 높은 만큼 삼성전자에 대한 방향성을 바꿔버리면 코스피지수가 바뀌고 그에 따라 공매도 수익과 파생시장 수익이 커져 대형 헤지펀드들의 사냥감이 되기 쉽다”고 했다.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이 IT 등 특정 업종의 매매 방향성을 한 방향으로 정해 밀어붙이면 채권시장·환율 등에 연동돼 파괴력이 커진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차익실현 규모에 관심이 쏠리고 있으나 ‘많이 번 물량부터 팔아치웠을 것’이라는 심증만 있을 뿐 추정조차 쉽지 않다는 게 증권업계 설명이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올 상반기엔 뱅가드 벤치마크지수 변경에 따른 10조원 규모 매물이 포함돼 있어 외국인 수익을 평가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 윔블던 효과 외국에 개방한 국내 시장에서 외국 기업이나 자본보다 자국 기업 활동이 부진한 현상을 뜻한다.

영국에서 열리는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 영국인 선수가 우승하지 못한 데서 유래했다. 올해는 77년 만에 윔블던 테니스 남자단식에서 영국인 앤디 머리가 우승하며 징크스를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