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바텍, 의료기기 '방사선 전쟁'

CT·조영장치 등 방사선량 줄인 신제품 개발 잇따라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의료기기 업체들이 최근 영상 품질은 높이고 방사선 피폭량은 줄인 저선량 제품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선 누출에 대한 환자들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1년간 자연에서 받는 방사선량은 2~3밀리시버트(m㏜). 방사선을 이용하는 의료기기는 고정밀일수록 노출선량이 많아진다. 폐 심장 소화기관 등 움직이는 장기 단면을 찍는 컴퓨터단층촬영(CT)은 한번에 8~12m㏜의 방사선을 사용한다. 일반 엑스레이(0.1m㏜)보다 80~100배 이상 많은 양이다. 이 때문에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방사선 피폭량을 줄인 고성능 의료기기로 적극 전환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 앞다퉈 경쟁

필립스는 지난 4일 저선량 혈관조영장치인 ‘알루라클래러티’를 선보였다. ‘클래러티IQ’ 기술을 적용, 뇌혈관 시술 시 방사선량을 기존보다 평균 73% 이상 줄였다. 클래러티IQ는 디지털 이미징 파이프라인을 사용해 500개 이상의 시스템 조건을 미세하게 조정해 영상을 얻는 기술이다. 현재 원자력병원, 순천향대 천안병원, 고신대 복음병원 등에 설치돼 사용 중이다.

김태영 필립스전자 한국대표는 “과거엔 방사선량이 적으면 영상 품질이 낮아져 정확한 진단이 어려웠다”며 “지금은 필립스 클래러티 기술을 이용해 시술 중 의료진과 환자에게 노출되는 방사선 피폭량을 줄이면서도 영상 품질은 더 높였다”고 설명했다. GE헬스케어가 올해 3월 출시한 ‘브리보 CT385(사진)’도 저선량 솔루션인 ‘에이서(ASiR)’를 적용해 진단에 필요한 방사선량을 기존 기기보다 40% 낮췄다. 또 ‘ODM(organ dose modulation)’ 기술로 유방이나 눈 부위의 방사선 노출량도 줄였다. 한 번의 피폭으로 성인보다 최대 2~8배까지 영향을 받는 소아나 만성질환 환자도 주기적으로 CT를 찍을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방사선 피폭량 감소 기술 개발에 10여년 동안 약 5억달러를 투자한 GE헬스케어는 3억달러를 추가해 총 8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방사선 감소에 적극적이다.

◆국내 업체들도 개발 나서

국내 의료기기업체들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저선량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치과용 엑스레이 장비 1위 업체인 바텍은 올해 4월 저선량 치과 CT 기기인 ‘팍스 아이3D 그린’을 내놨다. 이 제품은 64㎠ 크기의 CT 기준으로 1회 촬영 시 30마이크로시버트(μ㏜) 이하의 유효 방사선량으로 촬영할 수 있다. 기존 기기의 방사선량보다 75% 이상 감소한 수치다. 서울에서 미국까지 편도 비행기를 탔을 때 유효선량인 60.6μ㏜의 절반 수준이다. 바텍 측은 20초 전후로 걸리던 치아 CT 촬영 시간을 5.9초로 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현정 바텍 홍보팀장은 “방사선량과 영상 품질은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선량을 낮추면서 영상 품질을 높이는 것은 기술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국내 업체들도 완제품뿐 아니라 저선량을 실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센서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