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역사' 발렌시아가 드디어 '실용성'을 입다

럭셔리 인사이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는 스페인 출신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1919년에 만들었다. 1936년 프랑스 파리에 진출하면서 패션계를 뒤흔들어 놓은 이 브랜드는 양가죽, 송아지 가죽 등을 활용해 모터백, 빠삐에 라인 핸드백 등 다양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왔다.

오랜 역사를 가진 발렌시아가는 지난해 연말 큰 뉴스를 발표했다. 바로 1984년생인 알렉산더 왕을 새 디자이너로 영입한 것이다. 그는 미국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중퇴한 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 지 5년도 채 안 된 젊은 디자이너다. 중국계 청년이 유서 깊은 패션 브랜드의 수장에 오른 것은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발렌시아가로 자리를 옮긴 알렉산더 왕의 첫 데뷔작이 최근 국내에 선을 보였다. 올가을·겨울 컬렉션 신제품에서 그는 벨벳, 가죽, 크레페(crepe) 등 독특한 소재를 많이 사용했다. 특히 지금까지 발렌시아가에선 볼 수 없었던 동물의 털을 활용해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도 강조했다. 색상은 검은색과 흰색을 기본으로, 크림색과 회색 등 무채색을 고집했다.

바느질을 전혀 하지 않고 레이저 커팅 기법으로 재단한 블라우스 등 선을 두드러지게 한 디자인으로 여성미를 강조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재킷 역시 옷핀 모양의 큼지막한 실버 메탈 잠금장치를 전면에 배치, 어깨선과 목선 등을 부드럽게 해 우아함을 살렸다.

가방에서는 그간 발렌시아가의 고전적인 모터백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르 딕스’ ‘말리온’ 등 클래식한 새 디자인의 제품을 처음 선보였다. 르 딕스는 앞 잠금장치와 손잡이 이음장치를 메탈로 만들었고, 말리온은 옷에 달았던 실버 메탈 잠금장치를 똑같이 활용했다. 둘 다 20~40대 직장인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들기 좋은 디자인이라는 설명이다. 대리석의 갈라진 석고처럼 자연스럽게 크랙(금)이 간 무늬를 옷과 신발, 가방에 접목한 것도 알렉산더 왕의 작품이다.

발렌시아가코리아 측은 “정(靜)이 동(動)과 대립하면서 잘 어우러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며 “특히 크랙 무늬의 니트는 니트 위에 석고처럼 표현하기 위해 페인트를 한 겹 입힌 뒤 이를 일일이 손으로 찢어 효과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을 일일이 동글게 말아 만든 점을 옷 전면에 수놓은 재킷도 주목받았다. 이 방식은 점프 슈트, 블랙 이브닝드레스 등 다양한 옷에 적용됐다. 그동안 한섬을 통해 국내에 들어왔던 발렌시아가는 지난해부터 한국지사를 설립, 직접 국내 매장을 관리할 정도로 한국 시장에 관심이 높다.

전지현 발렌시아가코리아 지사장은 “이번에 파리에서 열린 가을·겨울 신제품 패션쇼를 본 뒤 ‘알렉산더 왕이 일을 저질렀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입고 싶은 옷, 갖고 싶은 가방 등 좀 더 자신의 색깔을 입힌 독창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제품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