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휴게소 메뉴의 진화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기차역 앞의 ‘역전 식당’과 시외버스 출발지의 ‘터미널 식당’, 고속도로의 ‘휴게소 식당’은 뜨내기 손님을 상대한다. 대부분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사람이어서 맛에 신경을 덜 쓴다. 게임이론의 이른바 반복게임은 뜨내기 식당과 사무실 밀집지역 식당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고속도로 휴게소가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라 고급 식당에 버금가는 별미로 여행객을 끌고 있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170여곳 모두가 거의 맛집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영동고속도로 덕평휴게소의 ‘덕평 소고기국밥’이 제일 인기다. 쇠고기 뭇국에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맛을 낸 게 비결이다. 볶은 소고기와 채 썬 파도 얹어준다. 6000원짜리 이 국밥을 찾는 사람이 하루 500명, 연간 16만7500여명이나 된다. 국밥 하나로 연 매출 10억원이다. 지난해 휴게소 방문객이 1200만명으로 전년보다 21% 늘면서 국밥 판매량도 25%나 늘었다. 덕분에 안성휴게소(부산 방향)의 ‘안성 국밥’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인파가 몰리면서 휴게소 전체 매출이 500억원을 넘었다니 웬만한 기업 규모다. 영동고속도로 문막휴게소(강릉 방향)의 ‘횡성 한우국밥’과 서해안고속도로 화성휴게소(목포 방향)의 ‘양푼이 비빔밥’, 안성휴게소(서울 방향)의 ‘안성옥 국밥’도 맛집 메뉴다. 칠곡휴게소의 사골육개장(서울 방향)과 바지락살 배추된장국(부산 방향), 행담도휴게소의 시래기 된장국, 여주휴게소(강릉 방향)의 참치김치볶음밥 역시 연 13만~16만그릇 팔린다. 호두과자(1만9000개)의 8배다.

휴게소 식당이 달라진 것은 역시 치열한 경쟁 시스템이 도입된 덕분이다. 자동차 이동객이 급증하면서 손님들도 이제는 어쩌다 들르는 그런 뜨내기가 아니다. 한번 악평이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한국도로공사가 해마다 휴게소 대항 ‘맛자랑 대회’를 열어 메뉴를 개발하고 맛 차별화에 나선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김밥 등 스낵 위주의 단순한 식단에서 연잎밥, 곤드레돌솥밥 등으로 진화를 거듭한 메뉴 다양화도 한몫했다. 화물차휴게소에서는 삼겹살이나 각종 찌개, 탕 등 묵직한 요리까지 즐길 수 있다.

별미와 풍광을 겸비한 휴게소도 즐비하다. 전망 좋기로 유명한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와 중앙고속도로 춘천휴게소, 일출 명소인 동해고속도로 동해휴게소와 옥계휴게소, 아름다운 일몰의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와 화성휴게소가 그렇다. 언양휴게소 등에는 무료 샤워장까지 갖춰져 있다. 샤워도 하고 얼큰한 국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웠다면 이제 저마다의 금강산으로 식후경을 나설 일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