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한국에 있고, 중남미엔 없는 것

이학영 편집국 국장대우 haky@hankyung.com
브라질 최대 갑부로 한때 ‘세계 부자순위 8위’에까지 올랐던 에이케 바티스타의 추락은 드라마틱하다. 에너지 물류 부동산 정보통신 등 분야의 자회사를 거느린 EBX그룹을 이끌고 있는 그의 재산은 1년 새 343억달러에서 2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막대한 원유가 묻힌 유전 세 곳을 발견했다며 60여명의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이끌어냈지만, 생산성이 전무(全無)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몰락을 자초했다.

자신의 주력 석유회사인 OGX의 경영파탄은 물론 투자자들로부터 사기혐의로 피소당해 철창신세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바티스타를 ‘돈키호테’로 부르며 “그는 결국 원자재 붐과 정·관계 로비에만 기대했던 허상에 불과했다”고 꼬집었다. 브라질·멕시코 경제의 그림자

바티스타의 몰락을 접하면서 생각난 중남미의 또 다른 기업가가 있다. 멕시코의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이다. 멕시코 최대 통신회사 아메리카모빌 회장인 그의 재산은 지난 5월 현재 721억달러(약 80조원)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하지만 슬림을 진정한 ‘기업가’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에게 거대한 부(富)를 가져다준 것은 기업가 특유의 ‘혁신’이나 위험을 무릅쓴 ‘시장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돈방석’에 앉게 된 것은 1990년 카를로스 살리나스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 민영화한 국가독점 통신회사 텔멕스를 인수한 덕분이었다. 멕시코 정부가 경쟁입찰에 부친 텔멕스 주식 매각에서 슬림은 최고가를 제시하지 않고도 인수권자로 선정되는 ‘마법’을 발휘했다. 그의 신통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황금알’이 보장된 독점 통신기업을 인수하면서 매입대금 납부기간을 이연받았다. ‘외상’으로 최대주주가 된 뒤, 텔멕스로부터 받은 배당금으로 인수대금을 분할납부하는 ‘묘수’를 썼다. 그 과정에서 멕시코의 정치인과 관료들이 얼마나 두둑한 ‘뒷돈’을 받았을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살리나스 대통령이 퇴임 후 숱한 독직(瀆職)과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국운 가르는 ‘기업가’와 ‘기업꾼’

막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서도 ‘개발도상국’을 면치 못하고 있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부패한 정치·행정권력과 ‘기업꾼’ 집단 간의 음험한 공생(共生)이다. 한국이 경제개발에 본격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1960년대 초,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앞서 있었던 태국 필리핀 등 대다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낙후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이들 국가를 구별짓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에 몸을 던진 ‘기업가’의 존재 유무다. 중남미와 동남아 국가들의 소수 엘리트들은 대규모 투자와 오랜 기간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제조업을 외면하고, 국가기간산업의 대부분을 수입이나 외국계 자본의 투자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기업꾼’들은 그 와중에 권력과 결탁해 수입권을 독점함으로써 손쉽게 거대한 재산을 쌓아올렸다.

한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이들 국가를 따돌리고 경제강국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요인으로 삼성, 현대, LG 등의 ‘기업가’들 역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들은 변변한 자본과 기술이 없던 창업 초기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극단의 리스크와 싸우며 글로벌 일류기업을 일궜고, 양질의 일자리를 쏟아냈다. 그런 기업가들과 멕시코의 슬림, 브라질의 바티스타를 구별해서 볼 줄 아는 최소한의 ‘지력(知力)’이 아쉬운 요즘이다.

이학영 편집국 국장대우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