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제품을 고르다 스토리를 듣고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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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전쟁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조지 오웰의 전체주의 지도자가 미래에 대해 떠들어 대는 모습을 수많은 세뇌된 인간이 지켜본다. 그때 섹시하고 탄탄한 몸매의 반란자가 강당에 뛰어들어 스크린에 망치를 집어던진다. 스크린은 완전히 파괴되고 군중은 깨어난다. 이는 폭압에 대항한 휴머니즘, 기계에 대항한 인간의 정신, 무너진 세계를 되살릴 영웅의 출현을 의미한다.
조나 삭스 지음 │ 김효정 옮김 │ 을유문화사 │ 340쪽 │ 1만5000원
애플·나이키·폭스바겐…공통점은 갖고 싶다는 것
"SNS시대, 스토리텔링이 답"
애플의 유명한 슈퍼볼 광고 ‘1984년’이다. 단 한 차례밖에 방영되지 않은 이 광고에서 애플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창조적인 혁명이다.” 《스토리 전쟁》은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영역이 마케팅의 대상이 된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마케팅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영화 ‘매트릭스’를 패러디해 공장식 축산의 실상을 고발한 애니메이션 ‘미트릭스’와 소비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의 동영상 ‘물건 이야기’ 등을 제작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인물이다.
그는 축복받은 소수만이 거액의 광고요금을 지급하고 대중의 관심을 구매하던 100여년의 ‘방송시대’는 지나갔다며 “지금은 디지토럴(Digitoral)의 시대”라고 진단한다. 디지토럴은 디지털과 입을 뜻하는 오럴(oral)을 합친 신조어. 디지털로 무장한 대중이 정보 교환에 적극 참여하는 시대가 되면서 인류의 가장 오랜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구전의 전통이 되살아났으며, 여기에 소셜 네트워크와 멀티미디어 등 최신 기술의 파급력이 더해진 현대의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디지토럴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스토리는 구전되면서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 구전 과정에서 비틀리고 변형되는 동안 어떤 스토리는 도태되고 또 다른 스토리는 강력한 전파력을 확보한다. 현대세계에서 스토리 전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저자는 “구전전통의 스토리들처럼 적자생존의 조건을 이겨내야만 디지토럴 시대에도 성공하는 스토리가 될 수 있다”며 “가장 치열한 스토리 전쟁터는 시장”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생존력이 강한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신화들에서 교훈을 찾아낸다. 세계 도처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신화들은 오랜 세월 구전과 변형의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초강력 스토리다.
그는 비교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이 ‘영웅의 여정’이라고 말하는 이야기 구조에 근거한 마케팅의 실례를 다양하게 들면서 스토리텔링의 세계로 안내한다. 영웅의 여정은 일상세계와 모험으로의 소명, 스승과의 만남과 소명에 대한 거부, 용의 소굴로 들어가 보물 획득, 부활 또는 귀환 등의 네단계로 구성된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대본을 만들 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캠벨의 저서를 읽었고, 영화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남매가 ‘영웅의 여정’ 형식을 완벽하게 따랐다고 한다.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스토리는 진실을 담아야 한다는 것. 그는 “허영 권위 위선 허풍 속임수는 스토리 전쟁에서 패하게 하는 5대 죄악”이라고 규정한다. 대중의 결함이나 부족함을 빌미로 수요를 자극하는 결함마케팅을 반대하는 이유다. 대신 저자는 마케팅 분야에서 최초의 위대한 스토리텔러였던 존 파워즈의 3계명(진실을 말하라, 흥미를 유발하라, 진실을 실천하라)에 기초해 결함마케팅의 거짓을 폭로하고, 어린이가 아니라 영웅에게 말을 걸며,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