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석유의 황당한 유상증자 "공모금 횡령 가능성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당가치 -3만8914원인데 5000원에 팔겠다는 '배짱'
금감원 "투자자 판단에 맡겨야"
“외부 기관의 주당 평가액은 -3만8914원인 반면 유상증자는 주당 5000원에 진행합니다. 공모 금액의 횡령, 배임 가능성이 있지만 내부통제 장치가 없습니다.” “해외 정유사와 직접적으로 공급 계약에 대해 논의한 사실도, 다른 곳보다 싸게 석유 수입처를 확보할 수 있는 근거도 없습니다. 계획한 금액으로 1년간 제품 도입을 못하면 해산하며 투자금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리터(L)당 200원 싼 휘발유를 공급한다는 목표로 1000억원의 사업자금 조달에 나선 국민석유(대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가 증권신고서에 기재한 투자 위험 요소다. 투자은행(IB)과 정유업계는 “잠재 위험이 산재해 있다. 황당한 증권신고서”라는 반응이다. 국민석유 측은 “투자금을 마련한 뒤 문제점을 개선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유상증자에 성공할 경우 동양그룹 ‘불량’ 기업어음(CP)처럼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후폭풍이 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금감원, 5개월 심사 끝에 통과

금융감독원은 국민석유가 제출한 일반공모 유상증자 증권신고서를 지난 14일 처리(효력 인정)했다. 효력이 발생함에 따라 국민석유는 오는 18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한 달간 유상증자 청약을 할 계획이다. 주당 5000원씩 신주 2000만주를 발행해 1000억원을 조달하는 게 목표다. 국민석유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5월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두 차례 증권신고서에 문제가 있다며 ‘퇴짜’를 놓는 바람에 일정이 5개월가량 늦어졌다.

시장에서는 국민석유의 증권신고서가 처리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지적이 많다. IB업계 관계자는 “-3만8000원짜리 주식을 5000원에 팔겠다는 사람과 공모금액의 횡령 배임 가능성이 있고 내부통제 장치가 없다고 고백한 증권신고서라도 허용해주는 자본시장법 모두 문제”라며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대충 설명만 듣고 투자할 가능성이 큰데 왜 통과시켰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위험 요소를 제대로 알렸기 때문에 투자 부적격 여부는 투자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평가기관의 주당 평가액, 향후 사업계획 등 핵심 투자 위험을 충분히 알렸다고 판단해 증권신고서를 승인했다”고 말했다. ○‘동양 사태’ 재연 우려

국민석유는 소비자에게 ‘착한 석유’를 공급한다는 목표로 올해 3월 주식회사로 출범했다.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공모하는 게 아니라 돈을 모은 뒤 사업을 시작하는 이례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데다 사업의 현실성, 구성원 전문성 등에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논란이 커지자 국민석유도 조달자금이 150억원을 밑돌면 자금을 되돌려준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등 계획을 바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기름을 들여와 L당 200원 싸게 팔 수 있는 방법은 세금을 깎아 달라고 정부에 떼를 쓰는 방법뿐일 것”이라며 “제품 견적서에 전문용어 표기도 틀릴 만큼 전문성이 떨어지는 회사가 실제 국민 돈을 갖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석유에 따르면 본격 청약에 앞서 1년여간 진행한 인터넷 약정에 약 3만6000명의 개인투자자가 참여했다. 약정 참여 금액은 1700억원에 이른다.

이유정/심은지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