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동양사태에도…'품절녀' 된 CP

"기업어음 있어요?"에 창구 직원이 묵묵부답한 이유가…

단기 고수익 상품 줄어 낮은 금리 예금 떠나 온 부동자금 지속 유입
▶마켓인사이트 10월15일 오후 5시

“투자자들이 기업어음(CP)을 구해달라고 해도 물건이 없어 못 팔고 있습니다.” 한 증권사 신탁팀 관계자는 금융회사와 거액자산가들의 왕성한 수요로 인해 CP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동양그룹 5개 계열사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이 2만명에 가까운 CP 투자자에게 큰 고통을 안기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떠도는 자금이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으로 흘러나가지 못하고 단기 금융상품으로 쏠리는 데 따른 결과라고 해석했다. ○떨어지는 CP 금리

CP 공급 부족 현상은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할인율) 하락으로 확인되고 있다.

15일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가장 우량한 ‘A1’ 등급 CP 3개월물 금리는 이날 연 2.71%를 나타냈다. 국고채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올 5월 초 연 2.86%에서 되레 0.15%포인트나 떨어졌다. 신용등급이 낮은 CP도 우량 등급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투자등급 내에서 가장 신용도가 나쁜 ‘A3-’ 등급 CP 금리는 연 5.95%로 같은 기간 0.14%포인트 하락했다. 최근 CP 금리 하락은 공급물량의 빠른 증가 속에서 나타나 더욱 눈길을 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CP 발행잔액은 이날 현재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포함해 140조2400억원을 나타냈다. 지난해 말 127조2000억원에서 10% 넘게 늘어났다. 동양사태 직전인 지난달 27일 137조1600억원과 비교해도 보름 사이에 3조800억원(2.2%) 불어났다.

한 증권사 신탁팀 관계자는 “CP는 사모 방식으로 발행되는 특성상 50인 이상에게 팔 수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상품이 나올 경우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동양 사태 “영향 없어” 시장 전문가들은 동양 사태에도 불구하고 CP 수요가 탄탄하게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대상을 지정해 현금을 위탁하는 특정금전신탁에 계속해서 목돈이 몰리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권 특정금전신탁 잔액은 지난 6월 말 현재 218조원에 이른다. 작년 말보다 18조3000억원(9.2%) 급증했다. 전체 투자자산의 50.1%가 CP 등 채권이다. 특히 증권사 특정금전신탁은 CP의 최대 수요처로 전체 자산의 70%를 CP 등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금감원 신탁업무팀 관계자는 “최근 파악해본 결과 동양 사태 이후 증권사 특정금전신탁 영업이 위축된다든지 하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소액 투자는 불가능해질 듯

다만 현재 시행을 준비 중인 신탁 관련 규제 강화로 소액투자자의 CP 투자 기회는 적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존에 적게는 수백만원이었던 최소 가입금액을 5000만원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이 유력하게 추진되고 있어서다. 정보력이 약한 소액 투자자의 참여를 배제해 제2의 동양 사태를 막는 게 목적이다.

한 대형증권사 신탁팀장은 “동양그룹의 투기등급 계열사 CP 판매는 다른 증권사 신탁 영업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경우였는데 폭주족(동양)이 달렸다고 도로를 없애려는 격”이라며 못마땅해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