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법인세, 단일세율 개정 바람직하나

법인세율 체계를 현행 3단계 누진구조에서 단일세율로 개편하겠다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근 발언 이후 부자 감세 논란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현 부총리는 지난달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재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법인세율은 중장기적으로 단일세율 체계로 가야 한다”며 “중장기 정책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기재부가 지난 8월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법인세율 체계를 간소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현 부총리가 공개적으로 법인세율을 단일화하겠다고 밝힌 것. 이에 민주당 등 야당이 “대기업 감세와 중소기업 증세로 이어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공방이 벌어졌다.

현행 법인세율 부과 체계는 과세표준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 22% 등 3단계로 이뤄져 있다. 이를 단일화하면 자연스럽게 대기업 세율은 낮아지고 중소기업 세율은 올라가게 된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법인세 단일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정치적으로도 위험하다며 정부에 논의 중단과 함께 신중한 발언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 부총리는 “중장기적으로 조세 체계를 단순화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겠느냐는 취지에서 말한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정치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번주 맞짱토론에선 법인세 단일화에 대해 김학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과 신승근 민주당 정책위원회 전문위원의 찬반 입장을 들어봤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찬성 '법인=부자'는 잘못된 생각…OECD 23개국이 단일세율

법인은 자본가와 기술자, 근로자 등 다양한 경제주체의 결합체다. 자연인과는 다르지만 법률에서는 자연인과 같은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보고 있다. 법인 소득은 배당과 이자, 상여금, 투자를 위한 사내유보 등으로 쓰인다. 법인세는 법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경제주체와 법인의 생산·판매 활동에 연관된 모든 시장 참여자가 부담한다. 법적으로 법인세를 내는 주체는 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 법인세를 부담하는 것은 국민이며 법인세는 국민들의 소득에서 충당되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법인세율을 단순화하는 방안에 대해 ‘부자 감세’라는 정치적 수식어로 비난하며 중산·서민층의 감성에 호소한다. 법인을 구성하고 있는 경제주체들이 부자라면 법인도 부자고, 법인세 감세는 부자 감세라는 논리가 형성된다. 그러나 법인세 감세가 부자 감세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삼성전자 주식을 조금이라도 보유하고 있는 연봉 3000만원의 직장인 주주도 부자로 분류돼야 한다. 그러나 이 직장인이 부자라고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법인=부자’라는 잘못된 인식은 대규모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총수나 대주주, 고위 경영진을 법인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데서 온다. 이 같은 특수 계층이 해당 법인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부자라는 이유로 법인 세율을 중소기업보다 더 높게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대기업의 법인세를 높여 대주주나 고위 경영진의 배당소득이 줄어들면 목적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와 동시에 소액주주의 배당소득도 줄어든다. 이는 ‘법인=부자’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부작용에 불과하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다는 것은 개인 소득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법인세 중과세 한국이 유일…美·日·英 등 너도나도 인하

법인이 부자로 인식돼 있고 과세 강화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한국의 현실은 국제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수한 경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리스는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부유세를 도입했지만 법인세율은 20%에서 16%로 4%포인트 인하했다. 영국과 뉴질랜드, 캐나다 등도 2011년 이후 법인세율을 내렸다. 최근 미국과 일본도 법인세율 인하를 고려하고 있고, 영국은 현재 23% 수준인 법인세율을 2015년까지 20%로 낮출 예정이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23개 국가들은 단일세율로 법인세를 부과하고 있고, 8개 국가는 2단계 누진구조 형태의 세율 체계를 갖고 있다. 한국과 미국, 영국, 벨기에 등 4개국만이 3단계 이상의 누진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단일세율로 법인세를 부과하는 이유는 기업의 크기나 이익의 규모에 따라 차별적으로 과세하는 논리적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3년 32%이던 법인세율을 28%로 내렸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매년 2%포인트씩 낮춘 것이다. 금융실명제로 조세포착률이 늘어나면서 법인세율을 낮출 여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면서 조세 감면용 보조금 제도가 중단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정부는 1998년까지 법인세율을 25%로 추가 인하하고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기준소득금액을 단계적으로 인하해 단일세율 체계로 개편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법인의 이익이 특정 고소득 계층에 편중돼 소득 재분배적 입장에서 법인 소득에 대해 중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게다가 1998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법인세 단일세율 도입 계획은 좌초됐다.

법인세 구조 단순화에 반대하는 측은 법인세를 통해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러 연구를 살펴보면 법인세는 모든 경제주체에 의해 부담되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 효과가 미미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상당수 연구들은 법인세가 근로자나 소비자를 비롯한 여타 경제주체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법인은 부자가 아니라 여러 경제주체의 결합체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많은 국가들은 단일세율 체계로 법인세를 부과하고 있다. 2단계 누진구조를 시행하더라도 낮은 세율과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기준소득금액이 매우 낮다.

다른 경제주체 모두에 부담…소득 재분배 효과도 미미

법인세 단일세율을 도입하는 목적은 세제의 단순성을 지향하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법인세 단일세율을 도입하기 전에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법인세를 단순화하면서 줄어드는 세수를 보전하기 위해 기업에 적용된 비과세·감면을 대폭 정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모든 기업에 낮은 세율로 과세하도록 단일세율을 도입한다면 법인세제와 비과세·감면 제도에 의해 발생하는 조세 왜곡을 보다 축소할 수 있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도 기대할 수 있다. 법인세 누진세율과 비과세·감면으로 인한 조세 왜곡을 줄이는 것은 국가 경제의 성장을 촉진하고 결과적으로 국민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김학수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

반대 대기업 세금 더 깎아주기…월급쟁이·중기, 稅부담 가중

정부가 현재 3단계 누진 구조로 돼 있는 법인세율을 단일세율로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런데 법인세율을 단일화하면 중소기업들의 세율은 올라가고, 대기업들의 세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논의는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재부와 한국조세연구원이 공동 작성한 ‘미래 경제·사회환경 변화에 따른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 방향’ 보고서에도 담겨 있다. 이 보고서는 부가가치세와 주류·담배세 인상을 통한 증세 방안까지 다루고 있다.

세금과 관련된 논의를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서는 ‘참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 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은 어떻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준은 이렇고….” 차라리 “부자들은 세금이 줄게 되고, 서민들은 세금이 늘게 된다”고 확실하게 얘기하면 안 되는가.

어차피 국민은 다 알고 있다. 이치에 안 맞는 얘기를 하려면 으레 외국어를 많이 쓰고, 다른 나라를 들먹이며 길게 돌려 말하는 건 ‘힘 있는 분’들의 버릇이다.

법인세 3조6000억 줄어…올들어 재정적자 더 악화

사실 ‘재벌·대기업 세금 줄이기’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됐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법인세율 인하,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를 통해 약 100조원의 재정 적자가 국민에게 떠넘겨졌다.

‘재벌 대기업 세금 줄이기’는 올해 나라 살림 구멍 내기에도 결정타를 날리고 있다. 올해 8월까지 지난해에 비해 약 6조원의 세금이 덜 걷혔다. 이 중 법인세가 3조6000억원가량 줄었다. 전체 세수 부족액의 62.6% 규모다. 여기에다 더 줄이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재벌 대기업은 ‘정부의 힘 있는 분’들이 걱정하듯 세금을 많이 내고 있지 않다. 각종 비과세·감면으로 중소기업보다 더 낮은 ‘실효세율’로 특별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와 한국신용평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삼성전자가 11.9%, 10대 재벌기업 평균 15.1%, 대기업 평균 16.5%의 실효세율을 사실상 적용받고 있다. 물론 힘없는 중소기업에는 평균 22%의 최고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거꾸로 돼야 맞지 않을까.

소위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 국가와 비교를 해봐도 한국의 법인세율은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한국 법인세율은 지방세를 포함해 24.2%의 최고세율로 과세되고 있다. 우리가 통상 비교하는 주요 국가와 비교해 보면, 미국은 39.1%, 일본은 37.0%, 독일은 30.2%, 프랑스는 34.4%로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OECD 평균인 25.3%보다 낮은 수준이다. 실질적인 법인 부담을 나타내는 총실효부담률을 비교해 보면 더욱 낮다.

총실효부담률은 비과세·감면과 같이 실제로 부담하지 않는 세금은 제외하고 사회보장세와 같이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부문을 포함시켜 작성한 것이다. 한국은 OECD 평균인 42.5%보다 훨씬 낮은 29.8%의 부담률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46.7%, 일본 50.0%, 독일 46.8%, 프랑스 65.7%와는 비교하기도 힘든 수준이다.

어떻게 보면 세금은 국가라는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모두가 내는 회비와 같다. 서민들은 회비 안 낸다고 하는데, 껌 하나를 살 때도 10%씩 꼬박꼬박 회비를 내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돈 많이 버는 회사일수록 회비를 덜 낸다. 심지어 회비를 걷는 일을 맡은 ‘힘 있는 운영진’이 솔선수범해서 회비를 깎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더 깎아 주겠다는 것이다.
낮은 '실효세율' 특별 대우…대기업 세금 中企보다 적어

‘재벌 대기업 세금 줄이기’는 다른 말로 하면 ‘월급쟁이와 영세 자영업자에게 세금 떠넘기기’와 같다. 올해 정부에서 제출한 세법개정안에도 이 같은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세법개정안 분석을 통해 정부가 월급쟁이와 영세사업자가 부담하게 될 세금의 규모는 과소하게 평가하고 대기업이 부담하게 될 세금은 과다하게 평가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당초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소득공제 세액공제 전환’으로 2014년부터 5년간 약 3조5000억원의 세수 효과가 발생한다고 비용 추계를 했다. 즉 앞으로 주로 월급쟁이가 더 내게 될 금액이 이 정도 규모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심지어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가 근로소득 증가에 따른 세수효과 자연증가분을 고려하지 않고 최초 연도에 발생한 세수 효과가 이후에도 동일하다고 가정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면서 정부 발표보다 1조5000억여원이 증가한 5조원가량의 세금을 더 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영세자영업자들이 추가로 부담하게 될 ‘농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신설’도 정부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가 계산해 보니 5년간 약 3000억원의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법인세는 정부 발표보다 세금 부담이 약 45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세금을 떠넘기는 것도 모자라 속이기까지 한 것이다.

한 해 재정적자가 20조원 이상 발생하는 대한민국이 ‘재벌 대기업 세금 줄이기’에 여념이 없다. 국회 출근길에 마주친 어린 학생들의 어깨가 매우 안쓰럽게 느껴진다. 오늘 우리는 그들의 어깨에 무슨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인지.

신승근 < 민주당 정책위원회 전문위원 >읽을 만한 자료

△세금과 경제 성장, 요한슨 허디, 2008
△법인세 과세체계의 근본적 개혁에 관한 연구, 안종석·김성태, 2012
△증세없는 세수확보 방안, 김재진·김학수, 2013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김태일, 2013
△넥스트 이코노미, 김택환,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