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실적시즌'중간 점검'] 조선·화학·철강·정유株 등 기대 못미쳐…車부품·2차전지株는 저가매수 기회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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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곳 중 31곳만 영업익 늘어…자동차·우량 IT기업만 호조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실적시즌이다. 특히 3분기 실적은 기업의 ‘체력(펀더멘털)’을 객관적으로 가늠하는 지표 역할을 한다. 통상 4분기의 경우 연말 ‘밀어내기’와 비용처리라는 큰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3분기 실적을 살펴본 증시 전문가들의 반응은 한국 기업의 ‘양극화’ 현상이 여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올 2분기부터 글로벌 경기회복 기대에 힘입어 조선 화학 철강 등 산업·소재산업 종목들이 강세를 보였지만 아직 실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데 이견이 없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로 대표되는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업종으로 실적의 과실이 집중됐다는 설명이다. ○경기회복 ‘온기’ 못 느낀 실적
만도·현대위아·한일이화 등 향후 경기개선 효과 기대
올 3분기 실적은 최근 몇 년간 진행됐던 양극화 현상이 또다시 반복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일부 종목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반면 대다수 기업은 증권사 예상치에 못 미치는 실적을 냈다. 일각에선 ‘알곡(내실있는 기업)’과 ‘쭉정이(매출 등은 늘거나 유지해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업)’ 격차가 계속 두드러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에 10조16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한국 기업 최초로 ‘분기 영업이익 10조원 시대’를 열었다. SK하이닉스도 분기 매출 4조840억원을 올리면서 사상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대차 역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97%, 영업이익은 2.97% 증가하는 무난한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실적개선은 대형 종목 중에서도 일부 기업에만 집중됐다. 증권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지난달 31일까지 실적을 발표한 80개 주요 상장사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늘어난 기업은 전체의 절반에 못 미치는 31개에 불과했다. 올 2분기에 비해 영업이익이 개선된 종목도 38개에 그쳤다. 특히 2분기 이후 글로벌 경기회복 기대에 힘입어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주가가 반등했던 조선·화학·철강 업종의 실적이 예상에 못 미쳤다. 현대중공업은 올 3분기에 12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 작년 4분기 이후 처음으로 분기적자로 돌아섰다.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63% 급감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1.90%, 영업이익은 36.71% 뒷걸음질쳤다.
철강업체 대표주자 포스코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74%, 영업이익은 36.55% 쪼그라들었다. LG화학 역시 매출은 작년보다 0.54% 소폭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4%나 대폭 후퇴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56.70% 줄었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우량 IT기업과 현대차 등 소비재 기업의 실적이 양호했던 반면 최근 주가상승세가 좋았던 경기민감주는 실적이 기대치를 받쳐주지 못하면서 주가가 흔들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장기적으로 시야를 넓히면 환율 등 변수가 있긴 하지만 수출실적이 개선될 종목을 소비재든 자본재든 구분 없이 좋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와우넷 전문가 시각도 비슷했다. 최강천 대표는 “3분기에 실적 서프라이즈 비율은 현저히 낮고 기아차, 삼성엔지니어링, 에쓰오일, LG전자, 포스코 등 정유 건설 철강 등 대부분 수출주와 기간산업 종목들이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실적은 부진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경기회복과 내년 중국의 본격 경기회복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종목들의 턴어라운드 가능성이 크다”고 맞장구쳤다.
○“길게 보고 저평가 수출주 주목해야”
실적시즌을 맞이하면 일부 기대에 못 미친 종목들이 조정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 중에서도 장기적 업황과 실적 흐름이 개선되는 종목은 오히려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상훈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투자자들은 3분기 실적이나 올 4분기 실적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향후 경기 개선의 큰 그림을 살피는 게 낫다”며 “당장은 IT와 자동차 중심으로 가겠지만 올해 수주가 많이 늘어난 산업재들이 내년 초부터 강세를 보일 전망”이라고 말했다.
와우넷 전문가인 박완필 대표는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3 출시로 스마트폰 시장 성장성을 둘러싼 비관적 분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했고 반도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다만 지수 저항을 고려하면 삼성전자 우선주가 조정을 받을 경우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자동차 부품주인 만도, 현대위아, 한일이화, 평화정공과 내년도 턴어라운드가 기대되는 은행주를 추천했다. 박영호 대표도 “실적이 나쁘다고 무조건 모든 종목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미래가치라는 날개를 달고 반등을 했던 조선·2차전지 업종 등은 저가매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신중하게 실적 내용을 복기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주요 산업재 종목에서 증권사 추정치를 밑도는 실적이 나왔다는 것은 애널리스트들의 향후 업황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실적 예측치에 편향적으로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기존 주가에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적인 예상이 상당히 반영됐던 만큼 실제로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추가적인 상향 조정 폭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이미 실적이란 성적표가 나온 뒤에는 밸류에이션을 중점적으로 살펴서 비싼 종목은 피하는 게 정석”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