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쟁의 무대 된 예결특위

이태훈 정치부 기자 beje@hankyung.com
정부의 지난해 예산집행 결산을 위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5일 열렸다. 하지만 여야 국회의원들은 정부가 지난 한 해 국민의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야당 의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국가정보원 등의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데 할애했고, 여당 의원들은 이 같은 민주당의 태도를 비난하느라 바빴다.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북 심리전은 정치 개입이 아니라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발언에 “정치에 개입한 군인의 딸이 대통령이 됐다고 군이 이렇게 나와도 되는 거냐”고 말했다. 김 장관이 계속해서 “정당한 정책홍보를 통해 북한의 선동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하자 야당 의원석에서 “장관 사과해요. 빨리” “그게 무슨 정당한 임무예요”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여당 의원들도 야당 쪽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회의장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이군현 예결특위 위원장은 “결산에 관한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윤 의원은 발언시간이 지나 마이크가 꺼진 상황에서도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김 장관과 (정치 중립 의무 위반 혐의를 받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오병윤 통합진보당 의원은 정 총리에게 “국민과 민중은 어떤 차이가 있나”라는 질문을 했다. 정 총리가 “민중은 조금 사회주의적인 개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하자, 오 의원은 “국민은 일제시대 때 사용했던 황국신민의 줄임말로 써서는 안되는 말이다. 총리는 저보다 연배도 있으신 분이 한쪽만 보고 살았다”며 면박을 줬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결산과 상관없이 정쟁에 치중하긴 마찬가지였다. 일부 여당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숙원사업을 거론하며 총리와 장관들에게 해결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회법상 여야는 지난 8월31일까지 결산심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법정시한을 2개월 이상 넘겼지만 의원들 누구도 이런 상황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결산 부실심사가 재연되고, 내년 예산안 심사도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태훈 정치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