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홍등·옛가옥 …황금 도시의 '3色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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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수이진주수이진주(水金九)는 대만 북부 신베이(新北)시 루팡구 산 속에 있는 ‘수이난둥(水湳洞)’ ‘진과스(金瓜石)’ ‘주펀’의 세 곳을 이르는 이름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1920~1930년대에 광산으로 영화를 누렸던 황금도시라는 것. 반짝 하던 채광 산업이 시들해지면서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 도시들은 각기 다른 빛깔로 반짝이고 있다. 아직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이난둥부터 황금박물관으로 유명한 진과스, 홍등을 밝힌 아름다운 골목으로 유명한 주펀까지 수이진주의 3가지 매력을 느끼려면 천천히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 어디서도 보기 드문 산 속 도시의 풍경 속으로. 황금폭포가 들려주는 이야기, 수이난둥 수이난둥에는 황금폭포가 흐른다. 황금색 바위 위로 하얀 물살이 우렁차게 쏟아진다. 폭포와 눈을 맞추는 이는 드문드문 찾아와 기념사진 한장 찍고 가는 관광객들뿐이지만 폭포는 쉬지 않고 거침없이 흘러내린다. 눈이 부실 만큼 흰 폭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황금색 바위다. 물과 흙 속에 광물이 들어 있어 황금빛을 띤다. 낯선 빛깔에 반해 한참을 보고 있자니 폭포소리가 말을 거는 듯하다. ‘내가 말이야, 한때 얼마나 잘 나갔는지 알아? 저 위를 한번 보라고!’
황금폭포 위로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공중도시 같은 건물이 어렴풋이 보인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거대한 규모가 압도적이다. 폐허가 된 폼페이 유적지를 보는 듯하다. 동(銅)을 주조하는 공장이었던 13층 유적지는 황량한 모습으로 남아 수이난둥의 흥망성쇠를 가늠케 해준다. 한때는 금광석으로부터 금을 분리하던 수이난둥 제련소도 아직 남아 있다.
13층 유적지를 지나 뒤로는 바오스산, 앞으로는 인양하이(陰痒海)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다 보면 태평양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푸른 바다 같지만, 자세히 보면 푸른 바다 위에 노란 선을 두른 듯하다. 광물이 흘러가 바다 위에 그림을 그렸다. 파노라마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인양하이의 풍광을 제대로 즐기려면 자오르팅이라는 정자 옆 나무계단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 계단을 오르며 흘린 땀은 인양하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말끔히 날려준다. 황금도시, 진과스의 진면목
옛 금광이 있던 진과스에서 금괴만큼 유명한 곳은 광부 도시락을 파는 식당이다. 진과스도 식후경이라, 도시락부터 먹고 둘러보라고 입구에서 거리도 가깝다. 진과스 지도가 그려진 보자기로 곱게 싼 도시락은 향수를 자극하기 충분하다. 광부들이 먹던 따끈한 돼지갈비 도시락에서 온기가 전해온다. 뚜껑을 여니 큼직한 돼지갈비에서 갓 구운 훈연향이 솔솔 난다. ‘도시락 까먹는 재미’에 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도 고기반찬이 인기 아니었던가. 광부들의 원기 회복을 위한 고칼로리 식단이었으리라 짐작되는 도시락을 먹으며 잠시 추억에 젖어본다. 광부 도시락은 다 먹고 난 뒤 통은 물론 보자기와 젓가락까지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어 더욱 인기다. 그렇다고 설거지까지 해주지는 않는다.
배를 든든히 채운 뒤에는 진과스를 구경할 차례다. 식당 뒤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일본식 목조건물이 속속 나타난다. 황금도시로 영화를 누리던 시절 일본인이 지은 건물들이다. 그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은 ‘타이즈 빈관’. 전북 군산의 신흥동 가옥(옛 히로쓰 가옥)과 흡사하다. 실내에는 들어가 볼 수 없지만 잘 가꿔놓은 정원은 산책하기 좋다. 옛 궤도를 따라 좀 더 걸어가면 황금박물관이 나온다. 황금박물관은 황금도시 진과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광부들 사진, 장비와 작업복은 물론 당시 광부들이 깊은 땅 속에서 채광하는 모습을 알기 쉽게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았다. 이 모든 것이 일제 강점기에 개발됐다. 당시 많은 전쟁 포로들이 끌려와 황금을 캤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타난다고 했던가. 박물관 모든 전시의 끝에서야 세계에서 가장 큰 ‘금괴’가 번쩍이며 등장한다. 무게만 220㎏에 달하는 순도 99.9%의 금덩어리다. 매일 금괴 앞 전광판으로 시세를 알려준다. 직접 만져봐야 직성이 풀릴 관광객들을 위해 금괴가 담긴 박스 양 옆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래서 박물관 관람의 클라이맥스는 금괴를 손으로 쓰다듬어 보는 것. 금괴를 손으로 문지른 후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부자가 된다는 얘기가 전해와 금괴 앞에 선 사람들의 손이 바빠진다.
대만 옛 정취에 흠뻑, 홍등이 켜진 주펀1920~1930년대 아시아 최대 탄광촌으로 이름을 날린 주펀은 원래 아홉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작은 산간마을이었다. 그때는 아홉 개의 불빛만이 반짝이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매일 저녁 축제라도 벌어진 듯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유명 관광지가 됐다. 사람들은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길을 밝히는 홍등, 산기슭을 따라 만들어진 계단 양 옆으로 지붕이 마주 닿을 듯한 가게 등 타이베이에서는 보기 어려운 대만의 옛 정취에 이끌려 이곳을 찾는다. 황금박물관 앞에서 버스로 10분 거리라 진과스를 둘러본 뒤 들르기에 딱이다.
주펀 여행의 시작은 좋든 싫든 지산제부터다. 좁은 골목 가득 음식 냄새가 고여 있다. 마치 대만의 주방 한가운데 들어온 것 같다. 낯선 음식 냄새에 비위가 약한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재미를 즐기고 싶다면 느린 걸음으로 샤오츠(간식 거리)를 맛보며 지나갈 만하다. 지산제에서 맛볼 수 있는 샤오츠로는 땅콩전병 아이스크림, 토란으로 만든 경단 ‘위위안’ 등이 유명하다.
지산제를 따라 걷다 작은 사거리가 나오면 오른쪽 아래 계단이 수치루다. 노을이 질 무렵 수치루의 홍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온다. 홍등은 저녁 바람에 살랑이고 사람들은 차를 마시거나 계단을 오르내린다.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주펀의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싶다면 일찌감치 찻집의 창가 자리를 차지하는 편이 낫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델이 돼서 유명한 ‘아메이 차관’이 가장 인기다.
홍등의 불빛에 답하듯 마을의 집들도 불을 밝힌다. 사람 사는 집의 불빛은 수치루의 홍등과는 또 다른 온기를 뿜어낸다. 수치루를 조금 지나 주펀의 가장 높은 언덕에서 바라보면 불이 켜진 마을과 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마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풍경 앞에서 무엇을 떠올렸을까. 다음에는 이곳에 함께 오고픈 누군가를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대만=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여행팁
타이베이에서 수이진주로 가려면 버스가 제일 편리하다. MRT(지하철) 반난셴 중사오푸싱 1번 출구에서 1062번 버스를 타면 된다. 주펀, 진과스 순으로 도착하지만 진과스에 내려 수이난둥과 진과스를 둘러 본 후 주펀으로 이동하는 편이 하루 여행 코스를 잡기에 좋다. 진과스 황금박물관 앞에서는 수이난둥 투어버스 ‘수이진주 랑만하오(水金九浪漫號)’가 바로 연결된다. 매시각 1대씩 운행하니 시간을 맞춰 타면 효율적이다. ‘랑만하오’라는 이름처럼 귀여운 귤색 미니버스가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며 황금폭포부터 13층 유적지까지 안내한다. 한 바퀴 도는 데 약 50분 걸린다. 대만관광청 한국사무소 (02)732-2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