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조종사 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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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조종사 기근이 얼마나 심한지 미국에서는 공군 전투기가 제때 날지 못할 판이라고 한다. 당장 올해만 200명이 부족한데 복무 기한을 연장하는 조종사는 65%도 안 되니 심각한 모양이다. 오죽하면 미 국방부가 9년 이상 경력자 130명을 모집하면서 최고 10만달러의 연봉 외에 계약금을 22만5000달러나 준다고 했을까.
공군 조종사가 부족한 것은 늘어나는 민간 항공 수요 때문이다. 신규 취항하는 여객·화물기와 저가 항공사, 신흥국 갑부들의 자가용 비행기 열풍이 겹친 결과다. 민간 항공업계로서는 경험이 풍부한 공군 조종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베테랑 파일럿들이 무인전투기의 원격조종사로 옮겨간 것도 한 요인이다. 무인기가 항공 전투의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153명이 전직하자 놀란 미 공군이 부랴부랴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엊그제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향후 20년간 전 세계에서 조종사 49만8000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지난 10년간 경기 침체로 미국과 유럽에서 많은 조종사가 정리해고 당했고, 이 경력 단절이 전례 없는 구인난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조종사 부족이 가장 심각한 곳은 아시아로 2032년까지 19만2300명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중국은 거액 몸값으로 각국 조종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세계 항공 시장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중국의 민항기는 2000대를 넘어섰다. 새로 주문한 여객기만 800여대다. 국내선 여객 운송량도 미국 다음으로 많다. 중국 항공사들이 수천명의 조종사를 스카우트하는 과정에서 연봉은 27만달러(약 3억원)까지 뛰었다. 미국 항공사 선임자 연봉의 두 배다.
국내 항공업계도 만성적인 조종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인력양성사업마저 미진하다는 점이다. 국토부가 2009년 울진공항에 민간 비행교육훈련원을 유치해 올해까지 1000명을 양성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수료생은 111명에 불과하다. 이 중 조종사는 44명밖에 안 된다. 조종사 부족은 무리한 비행시간 연장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눈앞의 ‘찔끔 대책’보다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며칠 전 개막한 ‘두바이 에어쇼’에서도 1000대 이상의 항공기가 팔렸다. 총 계약금액이 뉴질랜드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1790억달러(약 189조원)다. 이 많은 비행기는 누가 몰까. 사업용 민간 조종사 양성 비용도 만만찮지만, 숙련된 전투기 조종사 한 명을 키우려면 10년간 120억원이나 든다는데….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