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B-52폭격기 동중국해 출격 '무력 시위'

인사이드 Story 中·日 방공식별구역 기싸움에 美도 가세

中에 통보않고 방공구역 통과…G2, 아시아 패권 갈등 격화
日도 방공구역 확대 검토…민항기 비행계획 제출 중단
미국 정부가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상공에 전략폭격기 ‘B-52’ 두 대를 중국 측에 사전통보 없이 전격 출격시켰다. 지난 22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 선언에 대해 반발하는 무력 시위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26일 미국 국방부는 “미국 동부시간으로 25일 밤 괌 기지에서 B-52가 이륙해 한 시간 정도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상공을 비무장 상태로 비행하고 돌아왔다”고 밝혔다. 미국 현지언론들은 “미국이 중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27일 겅옌성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B-52의 모든 비행과정을 감지했고 즉각 식별했다”며 “중국 정부는 해당 영역 상공의 모든 비행 활동을 유효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방공식별구역을 황해(서해)와 남해(남중국해)로 확대할 것이라는 방침도 재차 확인했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방공식별구역이 ‘종이호랑이’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에 “종이호랑이(紙老虎)라는 단어에는 특별한 함의가 있다. 마오쩌둥 주석이 과거 이야기한 종이호랑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고 답변했다.

과거 중국과 미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 마오쩌둥이 미국을 종종 종이호랑이에 비유하곤 했던 점을 거론한 것이다. ◆아시아 패권 두고 미·중 갈등 격화

미국과 중국의 이 같은 충돌은 이미 예상돼 온 일이었다. 미국은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아시아 회귀)’를 주창했고, 중국은 ‘중국의 꿈(中國夢)’과 ‘신형 대국관계’를 내세우며 서로 아시아 맹주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해 왔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상황은 중국 쪽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국의 연방정부 셧다운(일부 폐쇄) 사태로 지난달 7~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8~10일 브루나이에서 개최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모두 불참해 외교무대에서 망신을 당했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두 회의에서 미국의 빈자리를 채우며 중국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반사이익을 누렸다. 하지만 지난 8일 필리핀을 덮쳤던 초특급 태풍 ‘하이옌’이 미국엔 아시아 외교 강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됐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애도 성명을 낸 데 이어 2000만달러의 자금 제공과 더불어 항공모함 및 의료진을 파견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 외교를 폈다.

때마침 이란 핵협상이 지난 24일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부담을 덜게 된 미국의 외교력은 아시아로 더욱 집중되는 양상이다. 다음달 초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한국과 중국, 일본을 방문해 아시아 외교정책 변화를 모색할 계획이다.

◆틈새 공략으로 중국 견제하는 일본 일본 정부는 미국과 한층 더 밀착하며 중국을 공동 견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면서 동북아 정세의 갈등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난 26일 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양국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과 관련해 공동 대응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일본 방위성은 자국의 방공식별구역 범위를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000㎞ 떨어진 오가사와라 제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일본항공(JAL)과 전일본공수(ANA) 등 항공사 4곳은 중국 방공식별구역 상공을 지날 때 중국 당국에 사전 비행계획을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