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金 이어 금속·곡물마저 '뚝뚝'…'O·T·L'에 무릎 꿇다

2013년은 원자재 투자 '악몽의 해'

OverSupply - 공급과잉
설탕 생산 넘쳐나 가격 뚝…美 옥수수 풍작 탓 38%↓

Technology - 기술 혁신
금속 가공·생산기술 발달…니켈값 19.6%·은 35%↓

Loss - 손실
자연재해·병충해까지 번져…바나나·아몬드 '천정부지'
2013년은 원자재 투자자들에게 ‘악몽의 해’였다. 다우존스-UBS원자재지수는 연초 대비 약 10% 하락해 1992년 지수 산정을 시작한 이래 네 번째로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초라한 실적을 반영하듯 골드만삭스 등 월가의 대형은행은 원자재 담당 직원들을 사상 최저 인원으로 줄였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 회복 소식과 중동의 생산 차질 소식에 원유, 가스 등 에너지 부문은 대부분 강세였다. 하지만 안전자산인 귀금속은 글로벌 주식시장과 달러 강세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니켈 구리 철광석 은 등 산업용 금속도 맥을 못췄다. 옥수수 설탕 밀 등 농식품 가격도 출렁였다. 올 한 해 글로벌 원자재 슈퍼사이클을 뒤흔든 공급과잉(Over Supply), 기술(Technology), 손실(Loss) 등 세 가지 원인을 짚어봤다.
○O-공급과잉(OverSupply)

설탕 가격은 올초 대비 14.37% 떨어졌다. 사탕수수 재배의 양대국인 브라질과 태국에서의 생산량 증가가 원인이다. 브라질 사탕수수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일까지 브라질에서 생산된 설탕 규모는 3310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7% 늘었다. 2대 생산국인 태국에서도 설탕 생산이 증가세다. 태국 설탕 생산 규모는 1100만t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보다 약 9% 늘어난 수치다. 반면 수요는 줄고 있다. 설탕의 과도한 섭취가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설탕을 원료로 하는 제품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설탕 초과 공급분은 470만t이 넘을 전망이다.

세계 최대 옥수수 산지인 미국의 재고 증가와 풍작으로 옥수수 가격도 올 들어 약 40% 폭락했다. 연초 부셸(25.4㎏)당 6달러 초반이었던 옥수수값은 현재 4.2~4.3달러 수준이다. 지난해 55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부셸당 8.32달러까지 치솟았다가 반토막이 난 셈이다. 콩(-7.35%), 밀(-23.62%), 커피(-24.5%) 등도 풍작으로 인해 가격이 뚝 떨어진 상태다. ○T-기술 혁신(Technology)

기술 혁신과 투자 확대도 ‘원자재 슈퍼사이클’에 찬물을 끼얹었다. 스웨덴 컨설팅업체 로머티리얼스에 따르면 주요 금속 생산량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철과 니켈은 각각 105.1%와 65.2%, 아연과 구리는 55.7%와 27.9%씩 늘었다. 금 생산량도 4.7% 증가했다. 가격은 줄줄이 하락세를 보였다. 니켈 가격은 연초 대비 19.6% 떨어졌다. 알루미늄(-14.1%), 구리(-11.8%), 납(-10.0%), 아연(-9.1%), 주석(-2.6%) 등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전문가들은 금속 등 일부 원자재 생산이 증가한 원인으로 세 가지 기술의 진보를 꼽는다. ‘수압파쇄’ 기술은 셰일 퇴적층에 있는 천연가스나 원유를 뽑아내는 기술로 에너지 초과 공급을 불러왔다. 광산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재활용하는 기술은 금속 생산량을 늘렸다. 호주 광산 재벌 리오틴토는 현재 구리 채광 후 나오는 진흙 찌꺼기에서 금과 은 등을 뽑아내고 있다. ‘니켈 선철(NPI·Nickel Pig Iron)’ 가공 기술은 광업 혁명으로 불린다. NPI는 정련된 니켈보다 순도는 낮지만 산업용으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없다. 2007년 중반 t당 5만달러였던 니켈은 현재 1만4000달러 이하다.

○L-손실(Loss)

자연재해와 병충해도 원자재 시장을 뒤흔들었다. 필리핀을 덮친 제30호 태풍 하이옌은 국제 야자시장과 바나나시장까지 침범했다. 하이옌은 세계 3위 야자 생산국인 필리핀을 지나면서 300만그루가 넘는 야자나무를 쓰러뜨렸다. 현재 네덜란드 로테르담 상업거래소의 야자유 가격은 t당 1400~150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태풍 피해 이전보다 약 40% 오른 가격이다. 시장조사기관 LMC인터내셔널의 제임스 프라이 회장은 “야자유에 함유된 천연지방산은 대체식품이 별로 없다”며 “내년에 2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과일인 바나나값 역시 치솟았다. 태풍 영향으로 주요 바나나 생산지인 필리핀의 농경지가 훼손된 데다 병충해까지 번져서다. 바나나에 치명적인 곰팡이병은 현재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번지면서 ‘멸종 위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바나나 가격은 올 들어 5년 만에 최고치인 ㎏당 27.38달러까지 올랐다. 미국 유럽 등에서 꿀벌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올해 아몬드 가격도 8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