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아들이 선수통장 관리…훈련수당 '꿀꺽'

문체부, 체육단체 10곳 檢 수사의뢰

선수 1명 해외훈련에 임원 5명 '우르르'
국제대회 사업비 부풀려 7억원 횡령도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체육단체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체육단체는 그야말로 복마전(伏魔殿)이었다. 체육단체 수장은 가족을 임원으로 임명하고 선수들의 훈련수당을 빼돌리는가 하면 협회 예산을 개인 돈으로 사용하는 등 조직을 사유화했다. 또 직원들은 사업비와 후원 물품을 횡령하고 국고보조금 등을 개인 용도로 써버리는 등 ‘도덕적 해이’가 수위를 넘었다. 선수 선발은 공정하지 못했고 심판들 역시 부정을 저지르는 등 정정당당함을 생명으로 하는 스포츠맨십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특별 감사는 지난해 8월26일부터 12월24일까지 대한체육회, 국민생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시도체육회, 시도생활체육회, 시도장애인체육회 및 중앙, 시·도 경기단체 등 체육단체 2099개를 대상으로 서면 감사를 벌인 후 그중 문제가 제기된 493개 단체를 대상으로 현장 감사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5일 문체부가 발표한 체육단체별 조치 사항을 보면 대한체육회가 196건, 국민생활체육회 120건, 대한장애인체육회 21건 등의 순이었다. ○회장과 직원 ‘끼리끼리’ 횡령

대한공수도연맹은 회장의 가족을 임원으로 임명하고, 특히 상임부회장을 맡은 회장의 아들이 대표선수들의 개인 통장을 관리하면서 훈련 수당 1억4542만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회장 자녀가 선수로 있는 4개 단체에서는 선수 선발 과정, 훈련비 지급 등에서 특혜를 제공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경기도 태권도협회는 회장이 개인적인 소송 비용 550만원을 협회 예산으로 집행했고, 대한씨름협회는 사무국장 등이 대회 사업비 6300만원을 횡령한 의혹을 받아 모두 수사 의뢰 조치가 내려졌다. 대한배구협회 부회장 2명은 자체회관 매입 과정에서 불명확한 금전 거래를 했고 건물 가격을 부풀리는 등 횡령 의혹이 검찰에 넘겨졌다. 대한야구협회 직원들은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사업비를 중복으로 정산해 7억여원을 횡령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에서는 사무국장 등이 라켓과 운동화 등 5억원 상당의 후원 물품을 횡령한 의혹이 드러나 역시 수사 의뢰가 이뤄졌다.

대한유도회는 임원 28명과 전문위원 19명의 과반수(57.4%)를 특정 대학 출신으로 구성해 개선요구 조치를 받았다. 17개 시·도 협회와 가맹단체들은 모두 혈연, 지연, 사제지간 등 지인 중심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고 장기 재직하고 있었으며, 임원들은 업무활동비를 급여로 받으면서 별도로 차량유류비와 업무추진비를 법인카드로 사용했다. 전북승마협회는 선수 1명을 해외 전지훈련 보내는 데 임원 5명이 함께 갔다.
○심판 운영·선수 선발 ‘퇴장감’ 이번 감사는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선수 아버지인 태권도 관장이 자살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불공정한 심판 운영은 사실로 판명났다.

대한유도회는 국제 심판 추천 대상자 선정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추진해야 함에도 심판위원장 또는 집행부 임의로 선정한 것이 적발돼 시정 요구를 받았다. 대한승마협회의 심판은 자신의 소속 선수에 대해 심사를 기피해야 하지만 이를 따르지 않았고 순위, 배점 방식 등을 경기 당일 변경해 공지하는 등 불공정하게 대회를 운영하다가 적발됐다. 대한태권도협회는 특정 인맥에 의한 심판진을 운영해오다 심판 독립성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대한소프트볼협회는 자격 미달자에게 심판 자격증을 부정 발급했다가 경고를 받았고 부정 발급자의 자격증을 회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국가대표 선발도 엉터리였다. 대한수영연맹은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선수를 선발했는가 하면 대한빙상연맹은 무자격 선수 5명을 선발해 해외 대회에 파견했다가 현지에서 경기 출전이 무산되는 등 예산을 낭비해 기관 경고를 받았다. 이 밖에 대의원 총회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출해야 하는 단체장을 추대나 거수로 선출하고 자격 정지 중인자를 부회장에 선임하는 등 체육단체의 ‘반칙 행위’는 ‘퇴장감’ 수준이었다.

○시스템 개혁으로 체육계 자정

문체부는 이번 특별감사를 계기로 체육계 정상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한체육회에서는 경기단체 지배구조 개선, 경기단체 운영의 책임성 확보, 경기 운영의 공정성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고 가맹경기단체들도 관련 정관이나 규약 등을 개정하고 있다.

문체부는 새로 도입하는 상임심판제, 심판등록제, 심판판정에 대한 4단계 상고제, 심판퇴출제, 심판 기피제 등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해 이달 중 대한체육회 심판위원회 규정을 마련하고 올 상반기 중 심판 운영 편람을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 ‘스포츠 공정위원회(가칭)’를 설립해 체육계 비리, 불공정 관행 제보를 받을 계획이고 이달 중 ‘스포츠 3.0위원회’를 출범시켜 선진 체육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자문기구 역할을 수행하도록 할 예정이다.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은 “이번 특별감사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체육 개혁 작업”이라며 “비정상적인 관행을 정상화시키는 데 체육계가 앞장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