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 파고든 슬픔, 대륙서 답을 찾다…곽효환 씨 시집 '슬픔의…' 출간

일상과 내면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공간, 특히 유라시아 대륙을 향한 넓은 시선을 함께 담아 온 곽효환 시인(사진)이 세 번째 시집 《슬픔의 뼈대》를 발표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올해의 첫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그가 계속해서 풀어내고 다시 묻고 있는 ‘북방’에서 왔다. 화자는 슬픔과 상실을 뼛속까지 머금고 있다. 말하자면 이번 시집은 슬픔을 가득 품은 존재가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가”란 물음에 대한 답을 넓은 대륙에서 찾아가는 여정이다. 직업(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때문에 티베트, 차마고도, 고비사막, 러시아 등 자주 대륙으로 건너가는 시인 자신의 노래로 들리기도 한다. ‘먼 북방의 시원 바이칼호로 가는/몽골의 북쪽 마지막 국경도시 수흐바타르의 밤/흐릿흐릿한 열차 실내등 아래로 졸음이 밀려들고/칠흑의 어둠 속 창밖으로/손전등에 딸린 인적만이 이따금씩 오간다/뼛속까지 스미는 한기가/불현듯 치미는 슬픔을 불러오는/한여름 시베리아 벌판 국경의 밤/좀체 움직이지 않는 차창에 어린/낯익은 얼굴, 아득한 시절의 내가 있다.’(‘시베리아 횡단열차 1’ 부분)

슬픔을 머금은 존재는 답을 찾기 위해 대륙의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다.

‘너이고 나이고 우리인/토번이었고 변방이었고 티베트였고/혁명의 성지였고 불안한 자치주이고 고원이고 대륙인 이곳/말과 차와 소금을 따라 오고 간 퍽퍽한 발길들/검게 그을린 말간 얼굴들/(…)/무명의 사람들, 그 삶들이 서시인 길을 묻는다.’(‘하늘길의 사람들-차마고도1’ 부분) 슬픔이 대륙 곳곳을 돌아다닌 셈이지만, 결국 시인이 노래하는 건 절망이 아닌 희망이다. 대지를 돌며 좌절이 아닌 희망을 확장한 것이다.

‘고원의 강은 하나같이 북쪽 바이칼을 향해 흐른다고 했다/북으로 북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시베리아대륙을 가로지르는 열차에 오른 그날 밤/한 해가 넘게 조금씩 시들어가던 몸뚱이에서/무언가 불끈하는 것을 느꼈다/그 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수흐바타르 광장에서’ 부분)

서울로 돌아온 시인의 일상이 시집 말미에 펼쳐진다. 초교 4학년 아들과 야구를 하며 놀아준 여름날 오후. 시인의 노래가 다시 살아갈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플라타너스 그늘 벤치에 나란히 앉아/초콜릿 맛 얼음과자 한 개씩을 입에 문 부자의 휴식/어느새 콘크리트 바닥의 물기도 거의 말라가고/하오 다섯 시를 한참 더 지나서도/여전히 중천에 뜬 태양이 오랜만에 불을 뿜는/여름날 오후가 그렇게 뉘엿뉘엿 기울어갑니다.’(‘주차장 프로야구’ 부분)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