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금융권력' 사모펀드] '대박' 꿈꾸다 '쪽박'…투자 한 번 실패로 퇴출·소송까지 당해

(3) 화려한 성공신화의 그늘

연기금 '간택'을 받아라
자금 유치戰 땐 투서 난무…신생 운용사엔 '그림의 떡'

은행·증권계 '폐업' 걱정
출자자들 '외부 입김' 우려…운용역 잦은 교체도 불만
국내 1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이 작년 4월 서울 용산 지방행정공제회에 ‘애마’ 벤틀리를 타고 나타난 ‘사건’은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종종 화제가 되곤 한다. 김 회장은 이날 공제회에서 펀드자금을 출자받기 위해 ‘공손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최고급 외제차를 몰고 갑(甲)을 찾아간 그의 뱃심과 재력(財力)은 경쟁사들에 여전히 부러움의 대상이다.

코너스톤파트너스는 대선주조 투자 실패 한 건으로 PEF 업계에서 퇴출됐다. 우정사업본부 등 출자자의 위탁 자금을 몽땅 날려 소송까지 당했다. PEF의 세계는 화려하다. 30대 ‘상무’ 타이틀에 기사 딸린 최고급 승용차를 탈 수 있고, 잘되면 김 회장처럼 ‘억만장자’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 그만큼 경쟁은 치열하다. 내로라하는 명망가들이 PEF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기 다반사이고, 대형 은행 계열 PEF들조차 ‘폐업’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빈익빈, 부익부의 세계

PEF가 성공하는 핵심 열쇠는 국내외 연기금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자금을 끌어오느냐다. 기업으로 치면 일종의 매출과 비슷하기 때문에 PEF 운용사들은 기관이 위탁자금을 맡기기 위한 속칭 ‘미인대회’를 열 때마다 간택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지난해 국민연금 운용사 선정 과정에선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투서가 난무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펀드는 용처를 투자자가 묻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블라인드 펀드’라 부르며, 이 같은 유형의 펀드를 만든 곳은 비로소 PEF 업계 ‘메이저리거’로 대접받는다.

신생 운용사들이 연기금 돈을 받기란 바늘구멍에 낙타가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연기금 관계자는 “기관들은 안정적으로 투자 성과를 내기 위해 ‘트랙 레코드(투자실적)’가 좋은 운용사들을 선호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명망가들이 PEF 시장에 진출해도 ‘이름값’하기 쉽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은행장을 역임한 이덕훈 전 키스톤 프라이빗에쿼티(PE) 회장은 1년5개월 만에 PEF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민유성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2011년 티스톤에 합류한 뒤 지난해 10월 나무코프를 설립해 독립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윤영각 전 삼정KPMG 회장과 조건호 전 리먼브러더스 회장이 함께 설립한 파인스트리트도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 실패하는 쓴맛을 봤다.
○화려함 속 치열한 경쟁

투자 환경도 만만치 않다. 곽동걸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지금 호황인 산업이 5년 뒤에도 번창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경쟁자들은 보지 못하는 초과 수익의 기회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MBK파트너스만 해도 2007년 케이블TV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씨앤앰에 투자했지만 IPTV의 등장으로 경쟁이 격화되면서 퇴로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사교육 열풍을 보고 골드만삭스 등이 학원산업에 투자했다가 ‘쪽박’을 찬 경우도 마찬가지 사례다.

임유철 H&Q AP코리아 대표는 “PEF 자금을 쓰려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훨씬 더 많아지면서 매력적인 투자 대상을 낮은 가격에 매수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국민연금 대체투자실 관계자는 “기업 인수 후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PEF만이 살아남는 진정한 경쟁의 시대가 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펀드 출자자(LP)들도 지갑을 여는 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하고 있다. 정책금융공사만 해도 정해진 기간 내에 투자금을 소진하지 못하면 수수료를 토해내도록 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지원을 위해 기업과 동일 비율로 출자해 만든 펀드에 한해 운용사 관리 보수 기준을 약정 총액이 아닌 투자 실적에 따르도록 했다.

LP들의 높아진 문턱은 은행, 증권계열 PEF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PEF 업계 관계자는 “은행, 증권계열 운용사는 펀드 운용역이 자주 교체돼 책임투자에 대한 LP들의 신뢰가 낮다”고 지적했다. 투자 집행에 외부 입김이 작용하는 것도 기관투자가들이 기피하는 이유다. 은행계 PEF 관계자는 “이사회를 금융지주 임원들이 장악하고 있는 데다 리스크를 중시하는 은행 특성상 PEF의 투자나 운용에 시시콜콜 간섭한다”고 토로했다.

박동휘/하수정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