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FT가 극찬한 '뉴욕 10대 식당' 피오라 김시준 대표 "낙지호롱·콩나물국밥 미국서도 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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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독천식당서 '구운 문어' 영감유난히 추웠던 작년 1월 어느 날 새벽. 이탈리아계 미국인 요리사 크리스 치폴리니(왼쪽)는 전북 전주의 한 호텔 간이침대에서 눈을 떴다. 한국 맛기행을 위해 한국계 미국인 레스토랑 매니저 김시준 씨(오른쪽)와 함께 미국 뉴욕을 떠나온 지 3주째 되는 날이었다.
자갈치시장선 대게 파스타 개발
한국·이탈리아·미국 맛 조화시켜
매일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 강행군에 치폴리니는 지쳐 있었다. “10분만 더 자자”는 그를 김씨는 흔들어 깨웠다. 아침 메뉴는 전주 왱이콩나물국밥이었다. 치폴리니는 허름한 식당에서 맛본 국밥에 매료됐다. 무엇보다 국밥에 부셔 넣은 김 맛을 잊을 수 없었다. 6개월가량이 지난 지난해 7월 뉴욕 웨스트빌리지에 두 사람이 함께 낸 식당 피오라(Piora)에서 국밥 속의 김은 ‘김 버터’로 바뀌어 식탁에 올랐다.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등 세계 정상급 매체가 잇달아 대서 특필한 퓨전 식당 피오라는 이렇게 태어났다. 블룸버그는 최근 피오라를 지난해 뉴욕에서 새로 문을 연 10대 레스토랑으로 꼽았다.
장 조지, 토마스 켈러 등 뉴욕 정상급 스타 셰프 밑에서 식당 경영을 배운 김 대표는 정통 한식의 맛을 가미한 미국 식당을 만든다는 계획 아래 요리사를 찾고 있었다. 불고기가 한국 음식의 전부인 줄 아는 미국인 요리사가 어설프게 한식을 흉내 내는 식당을 열고 싶진 않았다.
김 대표는 치폴리니를 만났을 때 쾌재를 불렀다. “치폴리니는 세계 3대 요리학교인 뉴욕 CIA를 졸업하고 뉴욕의 유명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한 요리사였어요. 한국 음식을 접해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진짜 음식’에 대한 그의 열정을 한눈에 알아봤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무작정 한국으로 떠났다. 백지 상태에서 한국의 맛을 찾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시작한 맛기행은 순천, 여수, 전주, 목포를 거쳐 부산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낯선 지방 도시에서 최고의 맛집을 찾기 위해 페이스북을 활용했다. ‘어느 도시에 가면 어느 식당에 꼭 가봐야 한다’는 지인들의 추천이 이어졌다. 총 한 달간의 여정은 요즘 뉴욕에서 가장 예약이 어렵다고 소문난 식당 피오라 메뉴의 밑바탕이 됐다. 가령 ‘삶은(braised) 문어’는 미국 고급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다. 피오라는 이를 ‘구운(grilled) 문어’로 변형했다. 김 대표는 “목포 독천식당에서 나무젓가락에 말아 석쇠에 구운 ‘낙지호롱구이’를 맛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삶은 문어와 똑같이 요리하되 고추장 소스를 발라 한 번 더 구워냈다.
크랩에 흑마늘과 파를 곁들여 만든 부카티니 파스타는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즉석에서 쪄 준 대게 맛에서 힌트를 얻었다. 피오라는 특히 파스타를 전통 도자기업체 광주요 그릇에 담아내 한국의 맛을 더했다.
뉴욕에서 재해석된 한국의 맛을 현지 언론들은 극찬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어설픈 퓨전이 판치는 시대지만 피오라는 한국과 이탈리아 미국의 맛을 예외적으로 잘 조화시켰다”고 극찬했다.김 대표와 치폴리니 셰프는 “피오라가 만드는 음식은 한식도 아니고 이탈리아식도 아닌 맛있는 음식”이라며 “혼이 담긴 음식은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고 입을 모았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