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한·일 냉각의 그림자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傳 ahs@hankyung.com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FDI) 실적은 충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년에 비해 신고(-10.7%), 도착(-9.4%) 따질 것 없이 다 줄었다. 특히 제조업 투자가 23.8% 감소했다. 일본 기업의 투자가 줄어든 게 결정타였다. 전년에 비해 40.8%나 떨어졌다.

대일 수출은 아예 12개월째 내리막길이다. 작년 대일 수출 감소세가 두 자릿수대로 올라섰다. 주력 품목도, 농수산품도 일본 시장 점유율이 곤두박질쳤다. 한국이 일본 시장에서 가장 죽 쑤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일본인 관광객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전년 대비 22% 줄었다. 정부는 이걸 다 엔저 탓으로 돌려버린다.

투자·수출 등 내리막길

한·일 관계 냉각의 불똥이 사방으로 튀는 양상이다. 별 영향이 없을 것 같은 정보기술(IT) 분야조차 예외가 아니다. 일본 1위 통신사 NTT도코모가 지난달 말 ‘타이젠폰’ 출시를 미루겠다고 발표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삼성전자가 구글에 맞서 ‘제3의 OS’로 추진하는 타이젠은 적지 않은 타격이다. 삼성전자가 유독 맥을 못추는 곳도 일본 스마트폰 시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편견 탓이라고 분석했다. 양국 관계 냉각이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아닌지. 지금 일본 정부는 5세대 통신으로 한국을 제치자며 업계를 자극하기에 바쁘다.

이쯤되면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둔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라인’도 안심하기 어렵다. 이미 일본에서 한국 서비스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었던 터다. 일본 서비스라고 애써 홍보하지만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 일본 사용자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다른 분야도 벙어리 냉가슴 앓는 듯한 분위기다. 해외 인프라, 플랜트 등 한·일 간 제3국 공동진출이나 원자재·자원개발 협력 같은 얘기는 꺼내기도 어려운 판이다. 비상시 양국 간 금융 협력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기존에 이뤄지던 협조마저 수포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기회비용은 또 어쩌나

속이 타들어가는 국내 중소 부품·소재업체도 적지 않다. 그동안 선전하던 자동차 부품업체조차 대일 수출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일본 퇴직 기술자의 국내 유입도 난관에 부딪힌 형국이다. 일본 전자업체가 몰락한다고 우쭐댈 때가 아니다. 구조조정으로 쏟아지는 일본 기술자를 욕심내는 국가들이 사방에 널렸다. 지금 같은 분위기에 일본 기술자가 왜 한국에 오겠나.

한·일 정상이 만나지 않아 발생하는 기회비용도 만만찮다. 정상회담 단골 메뉴로 올라오던 양국 간 기술교류가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아베노믹스를 원망만 할 뿐 일본 경제개혁이 가져다 줄 새로운 기회는 먼 얘기로 밀려나고 있다. 일본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이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도 우리는 아무 정보가 없다. 이게 한·일 경제관계의 현주소다. 이것도 다 엔저 탓으로 돌릴 텐가. 지금의 한·일 경제관계는 누가 떼고 싶다고 뗄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 싫든 좋든 양국은 협력 말고 다른 선택이 없다. 일본에서 ‘한국 경제 봉쇄론’ ‘일본 기업 철수 시나리오’ 등이 흘러나온다지만 이미 복잡하게 얽힌 양국 경제로 보면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러나 바로 그 복잡성 때문에 한·일 냉각의 기회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냉전 상태로 가야 하나.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傳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