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영낭자전', 감흥없는 조선판 '사랑과 전쟁'

창극 리뷰
서울 장충동 달오름극장에서 23일까지 공연하는 창극 ‘숙영낭자전’.
조선판 ‘사랑과 전쟁’이라는 부제가 무색했다. 오는 23일까지 서울 장충동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창극단의 신작 ‘숙영낭자전’ 이야기다. 제작진은 인간의 사랑과 욕망을 다루겠다고 공언했는데, 극 어디에도 납득할 수 있는 사랑과 욕망은 없었다. 그렇다고 가슴 찡한 멜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희극과 비극이 물과 기름처럼 둥둥 떠다녔다. 공연 중간쯤부터 책 읽는 여인 역을 맡은 서정금의 원맨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널리 읽었던 고전소설을 뼈대로 만든 창극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안동에 살던 선비 백상공과 부인 정씨는 어렵게 외아들을 낳는다. 그런데 꿈에 선녀가 나타나 아들이 본래 하늘의 신선이었는데 선녀 숙영낭자와 사랑을 나누다 들켜 인간 세상에 귀양을 오게 됐다고 말한다. 아들 선군은 장성해 꿈 속에서 숙영을 만나고 상사병에 걸려 드러눕는다.

부부는 아들의 방에 노비 매월을 시첩으로 들여보내지만 별 차도가 없다. 선군은 숙영을 만나기 위해 떠나고 결국 숙영과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하지만 선군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간 사이 상공은 며느리의 정절을 의심하게 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평소 선군을 짝사랑해 온 매월은 이 기회를 틈타 음모를 꾸미고, 결국 숙영은 자결한다.

무엇보다 극의 핵심인 선군(김준수)과 숙영(박애리), 매월(이소연)이 밀고 당기는 욕망에 설득력이 없었다. 선군과 숙영이 그려내는 사랑에 진심이 묻어나지 않는다. 몰입하기 힘들다. 매월이 극 말미에 보여준 표독스러운 연기는 인상적이다. 하지만 매월이 선군을 왜 사랑하는지, 왜 숙영을 모함하는지가 친절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발단과 전개가 뭉텅 빠진 느낌이었다. 낯 뜨거운 애정신도 거슬렸다. 선군과 매월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표현하기엔 너무 서툰 어린아이 같았다. 다만 책 읽는 여인에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무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좌중을 압도했다. 공연 시간(100분) 내내 이어지는 지루함을 조금은 해소시켜 줬다.

지난 19일 재개관한 달오름극장은 연극과 창극을 육성으로 공연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했다. 그런데 왜 공연에선 마이크를 써야 했을까. 창극배우들의 탁 트인 목소리를 기계 없이 듣고 싶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