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젠슈타인·전함포템킨·오데사·포템킨계단

현지시간 2014년 2월 7일 20시14분에 개막한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의 TV 생중계 화면에서 첫 장면은 러시아 알파벳 소개입니다. 러시아어 알파벳 가운데 ‘에이젠슈타인’을 상징하는 영어 E를 반대로 세운 듯한 아래 [SBS TV 중계화면 캡처]에 유독 눈길이 꽂혔습니다.
SBS TV 중계화면 캡처
이는 1925년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 (1898~1948)이 만들어 영화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전함 (戰艦) 포템킨’에서 비롯합니다. 전함 포템킨은 영화 역사상 처음 혁신적 편집기법으로 불리는 ‘몽타쥬’를 도입한 작품이라는 평가입니다. 잘 알려지다시피 이 영화는 역사인 포템킨호의 수병들이 제정 러시아 장교들에 저항, 봉기했던 1905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당시 러일전쟁에서 패한 제정 러시아 해군은 흑해로 귀환하면서 극심한 고생을 겪어야 했습니다.

급기야 음식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열악한 상황에 뿔 난 수병들이 들고 일어섰고 현재는 우크라이나 속한 ‘오데사’ 시민들이 봉기에 동참하며 사태는 악화됐습니다. 이에 제정 러시아는 코사크 기병대를 파견해 이들을 진압합니다.

1917년 소비에트 혁명 이후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사건은 ‘작은 (1차) 러시아 혁명’이라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 정부가 이 혁명 발발 20주년을 기념하고 에이젠슈타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전함포템킨입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소비에트 혁명을 선동하는 ‘기발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전함포템킨에 처음 적용된 몽타쥬기법은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두 개의 장면을 통해 새로운 ‘제3의 개념’을 창조하는 것으로 영화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오데사주 홈페이지 캡쳐.
에이젠슈타인은 5개 에피소드로 구성한 전함포템킨에서 우크라이나 흑해 북부 연안도시 오데사에 있는 ‘포템킨 계단’을 배경으로 한 4번째에서 몽타쥬기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오데사 계단에서 총을 쏘는 군인의 얼굴은 나오지 않고 다만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그림자가 비칩니다. 반면 공포에 휩싸인 봉기한 군중은 흩어져 도망가고 공포에 질린 모습이 반복됩니다.

특히 유모차를 끌던 어머니의 피격 사망과 그 유모차가 계단을 굴러 내려가는 모습이 명장면으로 꼽힌다고 영화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영화 ‘전함포템킨’에 대해 이처럼 장황하게 되새긴 것은 이번에 소치올림픽을 개최한 러시아가 소련이던 시절인 25년 전 1989년 2월 이 영화와 맺어진 ‘작은’ 인연에서 비롯합니다. 1990년 9월 30일 정식 수교한 대한민국과 소련은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을 계기로 영화 교류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습니다. 소련 영화 ‘전쟁과 평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차이코프스키’가 비록 제3국을 통하긴 했지만 국내에 수입돼 상영되었습니다.

1989년 2월, 당시 영화제작사 우진필림이 소련영화수출입공사와 직접 계약해 ‘전함포템킨’을 비롯해 에이젠슈타인의 작품 9편을 국내에 들여왔습니다. 공산국가 소련 영화의 첫 직수입 사례가 기록된 것입니다.

당시 기자 초년병 시절 (영화지면 비중이 거의 없던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막내)이자 영화에 대해 문외한이 이 내용을 국내에서 처음 보도하는 행운을 거머쥐었고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당시 보도한 기사는 이른바 '함량미달'이라는 사실입니다. 에이젠슈타인 영화의 '직수입'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전함 포템킨’을 봤다든지 또는 몽타쥬 기법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었다는 얘깁니다.

2008년까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정숙 당시 한겨레신문 영화담당 기자가 며칠 뒤 추가 취재를 통해 보도한 내용을 보고서야 비로소 ‘전함 포템킨’의 깊은 역사를 이해한 실정입니다.아무튼 25년의 세월 흐른 갑오년 2~3월에 걸친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과 러시아-우크라이나 긴장고조 등 일련의 사태에서 ‘에이젠슈타인’ '전함포템킨' ‘오데사’ ‘포템킨 계단‘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이후 프리몰스키 계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함)’ 등의 낱말이 많은 사람 입에서 떠나질 않고 있습니다. ‘우려의 시선’에서 이처럼 거론되는 게 문제로 보입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