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통행료 없애라", "공짜로 영화볼 수 없다"

美 '망 중립성' 논쟁 후끈

비디오스트리밍업체
병목현상 심하자 공개 청원
초고속인터넷업체와 설전
통신망을 차별 운영하는 것을 막는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 원칙과 관련한 미국 내 논쟁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미국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인 넷플릭스가 최근 “좀 더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이 필요하다”며 공개 청원을 내자 초고속인터넷업체(ISP)들이 발끈하고 나서는 등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망중립성 종주국이라 불릴 만큼 관련 규제를 강력하게 추진한 나라여서 이번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세계 각국이 주목하고 있다. 망중립성은 네트워크를 가진 통신사들이 트래픽 유발 등을 이유로 특정 사업자에게 추가 과금하거나 서비스를 차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다.

○공개 청원 나선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미국 내 최대 콘텐츠 제공업체다. 지난 2월에는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시설 구축 비용을 추가 부담하라’는 미국 최대 초고속인터넷사업자인 컴캐스트의 요구를 수용하고 속도 향상을 위한 협약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1개월도 되지 않아 입장을 바꿔 ISP에 정면으로 맞서고 나섰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회사 블로그에 ‘인터넷 통행료와 강한 망 중립성 옹호론’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ISP들이 접속 대가로 ‘통행료’를 받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는 회원 증가와 데이터 폭증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 넷플릭스 서버가 있는 망과 ISP 망을 연결하는 회선의 용량이 모자라게 됐고, 이 탓에 넷플릭스 고객의 불평이 늘었다. 헤이스팅스는 “ISP들이 네트워크 간 상호접속(interconnection) 비용을 넷플릭스, 유튜브, 스카이프나 중개자인 코전트, 아마카이, 레벨3 등으로부터 받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헤이스팅스는 ‘강한 망 중립성’이라는 신조어를 강조했다. 정부 규제를 신설해 ISP들이 CP들의 서버를 공짜로 인터넷에 연결해 주고 서비스 속도도 보장하도록 강제하라는 것이 그가 주장한 ‘강한 망 중립성’의 골자다. 넷플릭스는 이 발언을 의견서 형식으로 미국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했다.

○반박 나선 초고속인터넷업체 논란이 확산되자 ISP들도 반박에 나섰다. 컴캐스트의 데이비드 코언 수석부사장은 이번 문제가 애당초 ‘망 중립성’과 별개라고 주장했다. 코언은 “망 중립성과 관련한 FCC의 ‘오픈 인터넷 규칙’은 원래부터 상호연결(peering)과 인터넷 상호접속을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업체들은 인터넷에 연결하기 위한 비용을 항상 부담해 왔다”고 말했다.

AT&T의 짐 시코니 수석부사장도 회사 공식 블로그에 ‘누가 넷플릭스를 위해 비용을 지급할 것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시코니는 “세상에 공짜 점심(free lunch)은 없으며, 또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영화 스트리밍을 전달할 방법도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미국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통신사업자인 버라이즌이 망 중립성 규제가 부당하다며 FCC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FCC의 망 중립성 규칙은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판결 직후 분주하게 움직이던 FCC는 상고 대신 새로운 망중립성 원칙을 준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넷플릭스와 ISP 간의 이번 충돌은 FCC의 후속 작업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보로 풀이되고 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