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필 대표 "산단공·단국대와 함께 신약 개발…곧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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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단지, 혁신의 현장김동필 넥스팜코리아 대표(사진)는 1995년 다국적제약사 BMS를 정년퇴직한 뒤 ‘제2의 인생’에 도전했다. 제약사 과장 시절부터 “내 회사를 갖고 직접 의약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키워 온 그는 나이 55세 때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정년퇴직 후 '인생2막 창업' 김동필 넥스팜코리아 대표
노후용 땅까지 팔아 투자 '올인'…수출길 열어
의약품 개발은 다음 세대 넘겨준다는 각오 필요
김 대표는 “퇴직금으로 당시에는 큰돈인 1억원 넘게 받은 터라 편안하게 살 수 있었고 주변에서도 말렸지만 25년간 제약업계에 몸담으며 키워온 꿈과 경험을 그냥 묵히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창업과 동시에 찾아온 위기
퇴직금과 지인들에게 빌린 돈까지 몽땅 털어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소규모 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공장을 2년 만에 완공하자마자 1997년 외환위기가 들이닥쳤다. 2000원을 넘어선 환율에 원료 수입은 엄두도 못 냈다. 갓 지은 공장을 6개월 동안 놀렸다.
김 대표는 “그때 처음으로 ‘괜히 사업에 뛰어들어나’ 하는 후회가 찾아왔다”고 회상했다. 창업 첫해 매출은 4000만원에 그쳤다. 하지만 이듬해 생각지도 않았던 ‘알당 5원짜리 약국조제용 소화제’가 효자 노릇을 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한 달에 5000만~6000만원어치씩 팔려나가며 사업이 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인생 2막에 ‘올인’ 승부
두 번째 위기는 2000년 의약분업이었다. 약국 조제가 금지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월매출이 10분의 1로 급감했다. 월 500만원 매출로는 한 달에 1700만원씩 나가는 직원들 월급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김 대표는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빚을 내 꾸려나가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후를 위해 마지막으로 남겨뒀던 안성 땅을 2002년 매물로 내놨다. 당시로는 꽤 큰돈인 10억원이 들어왔다. 김 대표는 이 돈으로 제네릭(복제약) 품목 10개에 대한 판매허가를 받기 위해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에 매달렸다. 2억원이나 들인 고혈압약 시험이 실패로 끝났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다행히 나머지 약들이 시험에 통과하면서 활로를 찾았다. 2002년 매출 20억원을 시작으로 매출 증가세에 탄력이 붙었다.
○미래를 생각하는 연구개발
넥스팜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234억원과 영업이익 35억원을 기록했다. 2012년의 실적(매출 242억원, 영업이익 47억원)에는 다소 못 미쳤지만 약가인하 여파 속에서 선전했다. 2010년 이후 꾸준히 200억원대 매출을 유지하며 10% 이상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2010년 충북 오송산업단지에 182억원을 들여 지은 최첨단 공장이 성장의 전환점이 됐다. 김 대표는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과감하게 투자 결정을 했다”며 “첨단공장 덕분에 지난해 처음으로 수출길도 열리고 다른 제약사의 위탁생산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연 매출 60억원 규모인 위궤양치료제 ‘넥시나’ 등을 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한국산업단지공단 투자로 개발 중인 과민성대장증후군 개량신약을 내년 하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단국대에서 기술이전 받은 천연물 신약 연구개발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의약품 개발은 당대에 결실을 보겠다는 생각보다 다음 세대에 먹거리를 넘겨준다는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성장 씨앗을 뿌린다는 각오로 경영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