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필리핀 '쌀 관세화 유예' 요청 또 거부…한국도 쌀 개방 논의 빨라지나

관세화 유예기간 연말 종료
개방 불가피론 힘 실릴 듯
세계무역기구(WTO)가 필리핀의 쌀 관세화 유예 요청을 또 거부했다. 필리핀은 쌀 관세화 의무를 5년간 한시적으로 면제받는 조건으로 의무수입 물량을 대폭 늘리는 제안을 냈지만 WTO는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올해 말 쌀 관세화 유예기간 종료를 앞두고 있는 한국 역시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WTO는 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상품무역이사회를 열고 필리핀이 요청한 쌀 관세화 의무의 5년간 추가 면제(웨이버) 안건을 부결시켰다. 필리핀은 2011년 말 쌀 관세화 유예기간을 앞두고 이번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WTO에 면제 안건을 제안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필리핀은 △쌀 의무수입물량 2.3배 증량(35만t→80만t) △의무수입물량 세율 40%에서 35%로 인하 △총 7개국 75만5000t 국별 쿼터 도입 등을 제안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 캐나다 호주 태국 등이 제기한 쌀 이외 요구사항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핀이 쌀 관세화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제안마저 WTO에서 거부되면서 국내 쌀 개방 논의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는 올해 말 쌀 관세화 유예기간 종료를 앞두고 6월까지 관세화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관세화 유예 가능 여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방 반대론자는 관세화를 하지 않으면서 의무수입물량도 늘리지 않는 방안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WTO가 상당한 대가를 지불한 필리핀의 관세화 유예 요청을 거부하면서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게 됐다.

한국은 20년 동안 쌀 관세화를 미뤄오는 대가로 이미 쌀 의무수입물량을 과도한 수준까지 늘렸다는 점에서 필리핀과 같은 웨이버 요청도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의무수입물량은 1995년 5만1000t에서 2005년 22만6000t, 올해는 40만9000t으로 급증했다. 국내 소비량의 8%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김경미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통상과장은 “필리핀의 쌀 웨이버 요청이 부결된 것은 유예 추가 연장을 위한 회원국들의 동의 확보가 어려우며 대가도 클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며 “한국도 쌀 개방이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게 됐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