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유로화 탄생으로 본 화폐발행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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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스토리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가 화폐발행을 독점하고 중앙은행을 통해 화폐를 공급하고 조절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그것이 최적의 제도라고 여긴다. 그러나 화폐는 원래 정부의 영역이 아니었으며,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되고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정부가 화폐공급을 독점하고 화폐금융에 대해 많은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정부에 의한 화폐공급의 독점과 중앙은행 제도는 자생적으로 진화한 게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다. 따라서 화폐공급의 독점과 중앙은행 제도는 시장 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화폐의 발행이 자유경쟁원리에 의한 게 아니라 정부의 재량과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고 국민들의 재산은 유실된다. 정부는 그로부터 상당한 이득을 챙긴다.화폐가 자생적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화폐를 창조할 것인가, 어떤 방법이 보다 우월할 것인가 하는 논쟁은 유럽연합(EU)의 화폐통합과 유로화의 탄생 당시 다시금 불거졌다. EU에 단일통화를 만들어 유통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새로운 통화를 만들 필요 없이 각국이 기존에 사용하던 화폐들을 병행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통화 간 경쟁을 시키는 게 낫다는 의견이 부딪친 것이다.
각국 통화가 자유롭게 경쟁을 하도록 할 경우 사람들은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통화를 주로 사용하게 될 것이고, 그런 경쟁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통화가치가 가장 안정적인 통화가 EU의 통화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게 후자의 주장이다. 화폐 간 경쟁을 통한 방법은 화폐의 기원과 발전이 자생적으로 생성되고 진화된 것이라는 생각과 맞닿아 있으며, 시장원리와도 잘 어울리는 방식이다. 수백 명에 달하는 경제학자들이 연대서명을 하면서까지 화폐 간 경쟁체제를 도입하자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창조된 화폐인 유로화를 발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정치적으로 결정된 유로화의 통화가치 안정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유로화 통화가치 안정을 위한 유럽 중앙은행의 제도적 장치를 각국 중앙은행의 경우에 비해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