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식 부총재 사임…韓銀 '술렁'
입력
수정
지면A10
김중수 총재 시절 2인자…임기 1년 남겨놓고 용퇴박원식 한국은행 부총재가 임기 1년을 남겨 놓고 사임했다. 이주열 총재 취임 한 달 만에 한은이 인사태풍으로 술렁이고 있다. 여진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자의반 타의반' 관측…후임엔 장병화·김재천 거론
한은은 9일 박 부총재가 이날자로 퇴임했다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달 취임한 이 총재의 인사 및 조직운영 등을 위해 박 부총재가 용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부총재는 사내 전산망에 올린 글에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이런 결정은 한은을 사랑하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퇴임식을 사양하고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1982년 한은에 입행한 그는 2012년 4월 부총재를 맡았다. 임기는 3년으로 내년 4월까지였다.
하지만 지난달 1일 이 총재가 취임하면서 중도 퇴임설이 돌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2010년 4월 취임한 김중수 전 총재는 한은 개혁을 내세워 파격적인 인사스타일을 고집했고, ‘정통 한은맨’인 이주열 당시 부총재는 이에 비판적이었다. 반면 김 전 총재는 이 부총재를 이은 박 부총재를 전폭적으로 신임했다.
이 총재가 취임하자마자 박 부총재를 교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배경이다. 한은 주변에선 이날 박 부총재 사임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임기를 지키기에는 이 총재와의 접점이 너무 약하다는 점, 과거 김중수 체제에서 ‘핍박’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감, 조직 내 소용돌이를 최소화하려면 자신의 용퇴가 불가피하다는 판단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 총재는 취임 사흘째였던 지난달 3일 인사 경영 최일선에 있던 실·국장들을 교체하며 ‘물갈이’를 예고한 상태다.박 부총재 한 사람의 용퇴로 한은이 평온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전 총재가 기용한 부총재보 등 핵심 집행부도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부총재 사임으로 한은 내 조직 갈등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신뢰와 안정성을 중시하는 중앙은행이 마치 파벌싸움에 휩싸인 듯한 양상을 빚을 수 있느냐는 비판이다. 더욱이 한은 부총재는 당연직 금통위원이면서 한은을 대표하는 중요한 자리다. 부총재 임명방식이 ‘총재 추천 후 대통령 임명’으로 바뀐 2004년 이후 부총재가 임기를 못 채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총재는 김 전 총재와의 불화 속에서도 2012년 4월까지 부총재 임기를 지켰다.
신임 부총재 후임으로는 부총재보를 지냈던 장병화 서울외국환중개 대표이사와 김재천 한국주택금융공사 부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유미/마지혜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