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린 국가개조] '취업 제한'의 역설…"민간으로 못돌아가는데 왜 공직 지원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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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개방 확대 실효성“역설적으로 이제 민간으로 나갈 길이 완전히 차단되는데 누가 공직을 지원하겠습니까. 급여 차이도 많이 나고 공무원에 대한 이미지도 나빠졌잖아요.”
작년 충원된 고위직 중 민간 출신 고작 22%
계약기간 2년 불과…연봉도 반토막 수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대국민담화에서 공직을 민간에 대폭 개방하겠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많은 인재가 공직을 지원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개방 취지와 현실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마음놓고 일하기 힘들다”
그동안 민간 인재들이 공직 진출을 꺼려온 이유 중 하나가 신분 보장 문제였다. 개방형 공직의 경우 보통 계약기간이 2년에 불과하다. 업무성과를 인정받으면 최대 5년까지 계약 연장이 가능하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안정된 직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다.
퇴직 후는 더 걱정이다. 재취업 제한 규정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현행 규정상 4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전 5년간 소속된 부서와 업무 관련성이 높은 기업이나 로펌, 회계법인 등에 퇴직 후 2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게다가 앞으로 퇴직 전 5년간 ‘소속 부서’ 조항은 ‘소속 기관’으로, ‘퇴직 후 2년간’ 취업 제한은 ‘퇴직 후 3년간’으로 강화될 전망이다. 이 정도면 퇴직 후 당장 갈 곳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공직사회의 예산 및 인사 제약도 민간 인재 수혈에 걸림돌이다. 지난해 대기업 임원을 그만두고 1급 공무원이 된 A씨는 “공직에 들어와보면 민간에선 보기 힘든 여러 가지 규정이나 관행이 있다”며 “책임자라 하더라도 사람을 뽑는다거나 예산을 쓰는 데 제약이 있기 때문에 유능한 인재도 마음껏 능력을 펼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진재구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인사행정학회장)는 “진짜 뛰어난 민간인은 굳이 공직에 지원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며 “(박 대통령 구상대로) 부처별 선발 방식을 중앙선발시험위원회를 설치해 선발하는 식으로 바꿔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기업 임원 2억vs실·국장 1억민간과 공직의 연봉 격차가 너무 크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중앙부처 실·국장급 고위공무원의 경우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원칙적으로 기본연봉(기준급+직무급) 상한선은 9600만원가량이다. 여기에 급식비, 직급보조비 등을 더해도 1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지난해 상장사 임원 평균 연봉 2억877만원의 절반도 안된다. 게다가 업무용 차량 제공 등 복지 수준은 민간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민간 개방형 공직은 극심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지난달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장급 자리인 심판관리관을 민간에 내놨지만 지원자가 없어 3차 공고까지 들어갔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지원자는 단 한 명에 그쳤고 그마저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규제개혁 업무를 총괄할 총리실 규제조정실장은 4개월 넘게 공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원자가 적다는 이유로 관료 출신이 이런 자리를 꿰차고 앉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개방형 공모제도는 ‘무늬만 개방형’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지난해 충원이 완료된 개방형 고위공무원 139명 가운데 민간 출신이 31명(22.3%)에 그친 게 단적인 예다. 결국 보상체계와 근무여건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민간 인재 영입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주용석/김주완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