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즈베키스탄의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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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7
긴 인연의 흔적, 고려인에 대한 애틋함우즈베키스탄과 한국 사이에 직항이 열리면서 두 나라가 가까운 나라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이르는 대륙 길은 우리 민족이 청동기 시대부터 활발히 밟아온 길이지만, 남북이 분단된 이후 반 세기 동안 넘나들지 못하는 길이 됐기에 우리에게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는 멀고 먼 땅이 됐다.
한국 문화의 광활한 영토 되찾았으면
나선화 < 문화재청장 shrha@ocp.go.kr >
중앙아시아는 우리의 역사와 친연(親緣)관계가 없는 이슬람 문화권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비행기 길이 먼 길을 빠르게 다시 이어주면서 중앙아시아와 한국 간 오랜 인연의 흔적은 하나씩 하나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나는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유적의 화려한 내부 벽화와 건축 외장 장식 문양에서 한국 전통 문화유산과의 친연성을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하고 넓은 지역과 소통했던 한국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자부심으로 극심한 사막의 더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잊을 수 있었다.
18세기에 지어진 여름 궁전의 내부 벽, 장식 그림 가운데에는 그 색과 구도가 우리 조선시대 후기 민화에서 보는 ‘모란도’와 유사한 점을 볼 수 있었다. 화려한 모란은 권위와 부귀의 상징이다. 만개한 크고 붉은 모란 꽃송이가 흰 모란과 함께 피어올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사방 네 벽에 장식돼 있는 우즈베키스탄 모란은 18세기에,우리 궁중 모란은 19세기 때 마련된 것이니 우즈베키스탄 왕궁에서 모란이 먼저 핀 것인가. 우리 궁궐인 창덕궁 낙선재 한 편의 아궁이 벽을 장식하고 있는 깨어진 얼음조각을 연상시키는 기하학 무늬와, 낙선재 담장 일부에 장식돼 있는 거북 등무늬 연속 문양은 사마르칸트 사원 외벽 하단 장식 문양과 참 비슷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야생화로 피어 있는 접시꽃, 들국화, 부용, 이름 모를 연분홍 풀꽃, 버드나무 등은 고려청자에서 음각 또는 상감으로 그려지던 꽃 모양과 같았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은 이 같은 문화 환경의 친연성으로 인해 그 어려운 역경을 이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 중앙아시아와 한국을 이었던 모란의 아름다운 모습과 권위를 되살려 우리 전통 문화의 광대한 영역을 회복하고 싶다.
나선화 < 문화재청장 shrha@ocp.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