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싱크탱크'를 '마우스탱크'로 놔둘 순 없다

국민 신뢰 잃은 국책연구기관
부처이기주의에 연구결과 좌우
지방이전 계기로 통폐합하자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국책연구기관들을 한 우산 밑에 두고 시너지효과를 내보자며 상위 조직을 만든 게 1999년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그런 조직 가운데 하나다. 경제사회 분야 23개 국책연구기관을 산하에 두고 연구를 지원하고 경영을 관리해 온 것이 벌써 15년인 셈이다. 그러면 이 시스템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산업연구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모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기관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시너지란 없다. 오히려 요즘은 한바탕 전쟁을 치르느라 분주하다. 3개 기관이 저탄소차협력금제도를 놓고 공동연구를 진행해온 것은 5개월여다. 그런데 이들은 최근 열린 공청회에서 산업계 초미의 관심사인 공동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못했다. 대신 3개 연구소가 서로 상반된 내용의 자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공청회는 난장판이 됐다. 무슨 일일까.뒤에는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가 버티고 있다. 연구소가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와 산업부의 연구용역을 맡은 조세재정연구원과 산업연구원은 제도 도입을 결사반대했고,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서둘러 제도를 도입하자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공청회가 막장 드라마로 끝나자 정부는 3개 연구기관에 다시 합동보고서를 내라고 주문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각각 용역을 준 부처의 입장을 담은 보고서를 쓰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개탄한 부처이기주의를 국책연구기관들이 온갖 궤변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꼴이다.

국책연구기관은 정부 정책을 철저히 검증하고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국책연구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기관들은 준비 없이 미국식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도입한 결과라고 말한다. 사실 연구소 예산에서 차지하는 정부 출연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를 용역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연구원장까지 영업사원으로 나서야 먹고사는 구조라는 것이다. 구조가 그렇다 보니 용역 예산을 쥐고 있는 해당 부처 과장과 사무관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부처 입맛에 맞는 소위 ‘맞춤형 보고서’다. ‘싱크탱크’가 아닌 ‘마우스탱크’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상위 기관인 연구회에 이런 부작용은 관심 밖이다. 평가를 위한 페이퍼워크만 강요할 뿐이다. 산하 연구기관이 늘 이전투구를 벌이지만 이를 조정할 능력은 애초 없다. 정부 부처가 친 칸막이는 연구기관 간에도 똑같은 칸막이가 된다.마구잡이식으로 용역을 따다 보니 힘에 부친다. 용역의 절반 이상은 하청으로 외부 기관에 넘어간다. 그런 보고서 내용이 멀쩡하겠는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보고서가 절반을 넘는다. 그나마 보고서가 버려지는 게 나을 때도 있다. 터무니없는 정책 논리를 제공해 뼈아픈 정책 실패를 낳는 경우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공항과 도로, 철도가 무엇을 근거로 세워졌겠는가.

이런 식이라면 국책연구기관이 왜 필요한 것인가. 다 없애버리면 어떨까. 당장 무슨 문제가 생길까. 그래도 용역이 필요하다면 민간에 맡기자. 그 일을 소화해 낼 민간 연구소는 수두룩하다.

지나치다고? 그렇다면 현실적인 차선책을 생각해보자. 연구소를 종합연구기관 몇 개로 통합해보자. 그것도 지나치다면 부처당 몇 개씩 운영되고 있는 연구소를 하나로 통폐합하자. 그러면 정부 출연금을 크게 늘리지 않아도 연구소가 지금처럼 ‘용역 구걸’을 하지 않아도 된다. 국책연구기관들이 마침 지방으로 옮기는 중이다. 이참에 구조를 완전히 흔들어보자. 기재부 휘하의 한국개발연구원 조세재정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하나로 합친다고 문제가 생길까. 산업부 영역의 산업연구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도 따로 둘 필요가 없다. 국토교통부의 국토연구원 교통연구원도 합쳐보자.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2008년 다 논의됐던 내용들이다.신뢰를 잃은 국책연구기관들이다. 이런 기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만든 정부 정책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과감한 구조 개편만이 신뢰를 되찾는 방법이다. 서두르자.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