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뮤지션을 찾습니다

시장 데뷔보다 '선도'하려는 기업
은행이 앞서서 발굴하고 지원해야

이순우 < 우리금융지주 회장 >
얼마 전 한 해외투자기관의 투자담당자와 점심을 같이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신규 투자처를 찾다보면 ‘뮤직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벤처기업이 있는가 하면, ‘뮤지션’이 되고자 하는 벤처기업이 있다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화려하게 시장에 등장해 스타가 되려는 벤처기업이 뮤직스타형이라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는 열정으로 기술과 조직을 키우는 데 몰두하는 벤처기업은 뮤지션과 같다는 것이다. 그 투자담당자는 뮤직스타가 되려는 벤처기업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실현의 열정으로 음악에 몰두하는 뮤지션과 같은 벤처기업에 투자하겠다는 말이었다.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로서 그 이야기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대기업들의 성장을 기반으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뤄왔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오늘날,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 모두가 경제발전의 핵심적 주체로서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렇게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대기업과의 거래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과 기술력을 갖춘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새로운 시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금융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우리은행도 얼마 전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우수기술 사업화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우리은행은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도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기술실용화를 위한 경영 컨설팅과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비단 우리은행뿐만이 아니다. 다른 금융회사들 역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기업들을 찾고 있다.

폴 포츠라는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있다.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로 인해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는 휴대폰 매장의 판매 사원으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노래 연습을 하며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당당히 우승을 차지해 꿈을 이뤘다. 아마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폴 포츠는 평범한 샐러리맨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우수한 기술력과 비전을 가지고 있어도 작은 규모와 부족한 자본력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는 폴 포츠 같은 기업이 많다. 이런 기업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금융회사들이 앞장서 내실 있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발굴해야 할 것이다.

이순우 < 우리금융지주 회장 wooriceo@woorif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