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울수록 가깝지 않은 '관계의 일방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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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설치작가 박지혜 씨 개인전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에는 소리가 없다. 부모자식, 형제자매, 친구 그리고 연인…. 친밀한 관계일수록 큰 죄의식 없이 상대를 억압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쉽다. 영상 설치작가 박지혜 씨(33·사진)는 이런 관계의 일방성과 취약함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박씨는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대에서 순수미술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지난해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받은 유망 작가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친밀한 관계는 무수히 많은 개인의 관념과 습관이 충돌하고 타협하는 장”이라며 “친밀해야 하지만 친밀하지 못한 관계에 주목해 왔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동 갤러리 버튼에서 내달 7일까지 열리는 그의 세 번째 개인전 ‘파해(破海·Breaking the waves)’에서는 관계에 관한 비디오 작품, 콜라주, 평면 작업이 소개된다.아담한 전시장 가운데에 스크린 두 개가 직각으로 설치돼 있다. 작가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브레이킹 더 웨이브스’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4분30초짜리 2채널 영상 작품이다. 두 화면은 언뜻 봐선 별개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몇 분만 들여다 보면 하나로 연결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계를 들고 울부짖는 남자와 쓰러져 미동도 않는 여자의 이야기가 안갯속을 거닐 듯 몽환적인 화면 안에 이어진다.
전시장 한쪽에는 작가의 실제 머리카락을 뒤집어쓴 작은 인형이 가림막 안에 자리하고 있다. 3.45초마다 ‘찰칵’ 소리를 내며 눈을 깜빡이는 이 인형은 작가를 상징하는 분신과 같다. 콜라주 작품 한 점도 선보인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빈티지 프린트인 ‘빅토리안 스크랩’을 오려 만든 작품으로 신뢰를 잃어버린 연인 관계를 암시한다. (070)7581-6026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