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공대생에 대한 시대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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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소양, 쉽게 얻을 수 없어삼성그룹 하반기 대졸 공채 합격자 4000여명 중 80% 이상이 이공계 출신이라고 한다. 기업은 물론 국민은행 등 금융권에서도 이공계생 채용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공대생을 채용하겠다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이공계 출신 인재들의 사회적 책임이 커지는 만큼 다양한 소양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과학자의 삶을 살아오며 동일한 필요를 느낀 필자에게 이 같은 시대의 요구가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인문학은 특성상 기준에 대한 확실한 정의가 어렵고, 객관적 판단 방법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기업이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탐구해야
김춘호 <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president@sunykora.ac.kr >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매우 광범위한 학문영역이다.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이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은 사회와 산업 전반에 걸쳐 감성적, 문화적 요소가 강조되면서부터다. 기업은 이른바 ‘통섭형 인재’를 원하게 됐고, 특히 공대생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위한 기술,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는 시대적 요구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3년도 이공계생 취업률은 67.4%로 인문계열에 비해 23.6%포인트나 높다. 또 한 잡지 분석에 따르면 1994년 28.3%이었던 이공계 출신 CEO 비중이 2013년에는 48.7%를 기록했다.문제는 단순히 취업준비를 위한 몇 권의 독서와 짧은 노력으로는 인문학적 소양이 갖춰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와 오랜 시간의 고민이 동반돼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다. 더욱이 기술과 기계를 다뤄왔던 이공계 학생들이 대기업이 원하는 소양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필자가 총장으로 있는 한국뉴욕주립대에 현재 개설돼 있는 학과들 역시 인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소양을 가진 공대생 양성을 목표로 융합교육을 실현하고 있다. 개인적인 바람은 우리 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이 시대의 청년들이 단순히 취업만을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시대적 요구를 기회로 삼아 ‘스펙’과 씨름하느라 미뤄뒀던 인문학을 ‘학문’이 아닌 스스로의 고민으로 받아들이고 탐구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된 기술과 함께 친화력과 정치·행정력을 가진 인재로, 다른 분야와 소통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춘 과학자와 기술자로 성장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다.
김춘호 <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president@sunykor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