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텍스 매트리스 전문기업 '럭스나인' 김인호 사장 "내 인생 일곱 번째 도전…단 하나의 매트리스 위해 품질검사 밥 먹듯"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미국 최대 침대업체 씰리 韓 법인장 16년 근무 후 창업
"사업 목적은 이익보다 타인의 꿈에 씨앗 뿌리는 것"
곧 내놓는 오가닉 매트리스 등 친환경 제품으로 승부
럭스나인은 라텍스 매트리스 제품 등을 만드는 업체다. 이 회사의 김인호 사장(54)은 아침마다 성당에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틈나는 대로 복지시설에서 봉사한다. 누구보다 바쁜 신설업체의 사장이 왜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일까.

김포공항 부근에 있는 샬롬의 집. 지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이 살고 있는 복지시설이다. 김인호 럭스나인 사장은 이곳을 종종 찾는다. 직원과 함께 11월29일 토요일에도 이곳에 들렀다. 라텍스 매트리스 토퍼(topper)와 베개, 먹거리 등 총 300만원 상당의 물품을 갖고 봉사활동을 했다.김 사장은 이제 창업한 지 3년 된 신설업체의 사장이다. 제품 개발, 생산, 마케팅, 직원 채용과 교육 등 눈코 뜰 새 없다. 그런데도 주말을 이용해 복지시설을 찾은 것은 그게 바로 사업의 원동력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의 궁극적인 목적을 ‘건강한 공동체 건설에 미력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 그의 꿈은 ‘타인의 가슴에 꿈의 씨앗을 뿌려주는 것’으로 정했다.

회사명인 럭스나인(LuxNine)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 사회의 ‘성공의 사다리’가 점차 끊겨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모 재산이 자녀 운명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꿈을 불어넣을 수 있는가 하는 게 그의 관심사다. 직원 23명에 작년 매출이 34억원(올해 목표는 43억원)에 불과한 작은 회사의 사장이지만 김 사장은 이런 꿈을 갖고 있다.
럭스나인은 서울 방배동에 본사를 둔 라텍스 매트리스와 토퍼 제조업체다. 공장은 김포시 대곶면에 있다. 구한말 외침의 상흔을 간직한 강화도가 마주 보이는 곳이다. 공장 안에서는 직원들이 매트리스 커버를 만든다. 천을 누빈 뒤 테두리를 미싱으로 박는다. 양면을 지퍼로 연결한 뒤 라텍스 코어를 넣는다. 라텍스에는 얇은 방수 속커버가 씌워져 있다. 갓난아이가 소변을 봐도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어 겉커버를 씌운다.

럭스나인은 2011년 설립됐다. 이번이 그의 인생에서 일곱 번째 도전이다. 그는 도전을 즐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이번 도전은 그의 꿈 실현을 위해 직접 자기 사업에 나섰다는 점에서 다른 여섯 번의 도전과는 의미가 다르다.그의 첫 번째 도전은 조선맥주에서 이뤄졌다. 1960년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마친 뒤 상경, 철도고를 거쳐 철도청에서 일하면서 단국대 무역학과 야간과정을 다녔다. 주경야독이다.

영어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엔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 정철의 영어테이프를 통째로 외웠다. 영등포역 부근 조선맥주 기획조정실에서 칼스버그 마케팅을 담당했다. 신입사원이면서도 업무로 두각을 나타냈다.2년여 만에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닐슨의 문을 두드렸다. 인터뷰에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자 전화를 걸어 다시 인터뷰 기회를 달라고 요청해 결국 합격했다. 이곳에서 그는 닐슨의 경영진도 포기한 ‘맥주시장 인덱스’를 개발하는 등 초년생답지 않게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김 사장은 “당시 친구들에 비해 3배 가까운 월급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어느날 닐슨의 임원을 찾아갔다. “제가 보기엔 우리 회사는 너무 느슨한 것 같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새 영역에도 도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해당 임원은 당황했다. 대부분 직원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데 직원 주제에 임원을 훈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닐슨에서 일하면서 미국 유학에 대한 꿈이 생겼지만 이미 결혼해 아이 둘을 둔 상황에서 집을 팔아서 떠날 순 없었다.

궁리 끝에 한국방송광고공사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첫 번째 도전에서 떨어졌으나 1년간 재수 끝에 결국 수백명 응시생 중 2등으로 합격해 정부 장학금으로 미시간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공부했다. 1년 과정이어서 학위는 취득하지 못했고 나중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총학생회장을 맡아가면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획득했다.

귀국 후 세계적 생활용품업체인 유니레버코리아의 트레이드마케팅 팀장으로 일한 뒤 30대 중반에 개인사업을 하겠다며 잠시 업계를 떠났다가 미국 침대업체 씰리의 한국 사무소장을 거쳐 법인장으로 2011년까지 16년 동안 일했다.

그는 씰리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매트리스 분야에 도전했다. 씰리와 경쟁이 될 수 있는 스프링 매트리스를 피하면서도 품질 좋은 라텍스 매트리스 제품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방침을 정했다. 곧 출시할 ‘럭스나인 오가닉 라텍스’는 라텍스 코어는 물론이고 매트리스 커버도 오가닉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그는 친환경 오가닉 제품을 대표 제품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품질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모든 공정에서 품질검사를 실시한다. 우선 자재가 좋은지 점검하고 품질 기준에 미달하면 과감하게 반송한다. 연간 100여개 컨테이너 분량이 넘는 라텍스 코어를 외국에서 수입하는데, 그중 2개 컨테이너 분량을 반송한 적도 있다. 이때 해당 수출업체 관계자는 “글로벌 가구업체에도 똑같은 제품을 보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사장은 ‘품질엔 타협이 없다’며 거래 단절의 배수진을 치고 전량 반송했다.

창업 직후부터 비교적 순항한 것은 20여년간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면서 경험을 쌓은 데 따른 것이다.

게다가 첫 제품으로 내놓은 매트리스 토퍼 ‘럭스나인 라텍스 핫앤쿨’이 인기를 얻었다. 그는 “매트리스 위에 얹어 쓸수 있는 이 제품은 상하 양면이 겨울용과 여름용으로 나뉘어 뒤집어서 쓸 수 있고 지퍼로 분리할 수 있어 세탁이 편리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세계적 유통채널인 코스트코에서 인기를 끌면서 국내 유통업체들은 물론 해외의 유명 유통업체들과 상담도 오가고 있다”고 밝혔다.사업이 이제 본 궤도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타인의 마음에 꿈을 심어주겠다’는 그의 소망이 언제쯤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지 궁금해진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