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천경자·윤중식·이우환…해방 70년·미술 70년을 말하다

한경갤러리, 5일부터 유명작가 20여명 작품전
김환기의 ‘장미’.
국내 미술시장의 ‘대장주’ 김환기 화백은 참혹하고 어려웠던 일제강점기에 징용과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고향인 전남 신안군 안좌도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했다. 1945년 8월15일 고향에서 해방을 맞은 그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정물화 ‘장미’를 그렸다. 화면 바탕을 짙은 검정과 황갈색으로 처리해 일제 36년 암흑의 세월을 은유적으로 묘사했고, 광복의 기쁨을 활짝 핀 장미에 담아냈다.

김환기의 1945년작 ‘장미’를 비롯해 윤중식 권옥연 배동신 천경자 이우환 이두식 손상기 김창열 곽훈 오치균 송은영 송지혜 등 원로에서 중견, 신진까지 국내 현대 미술작가 20여명의 작품 30여점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1층 한경갤러리가 을미년 새해 첫 전시로 5일부터 23일까지 ‘해방 70년, 한국미술 70년’을 펼친다.
김창열의 ‘물방울’.
한국 현대미술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1940~1950년대 광복 직후 사회적 혼란 속에서 작가마다 창의적 도전을 시도했던 작품부터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1960년대 이후 최근 작품까지 소개된다. 완성도를 따져 ‘명품 수준’만 모은 기획전이어서 전시회 부제가 ‘블루칩 멤버스’로 붙여졌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70년 트렌드와 위상을 탐색할 수 있는 전시회여서 관심 있는 컬렉터와 기업들이 좋은 작품을 구할 수 있는 기회다.

천경자의 ‘모로코의 여인’.
출품작은 채색화부터 색채 추상화,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등 한국 미술의 프리즘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원로작가 천경자 화백의 1977년작 채색화는 모로코 여인을 통해 동양적인 한(恨)과 고독을 차지게 묘사했다. 한평생 붓질하며 살다 간 한국 화단의 거목 윤중식 화백의 작품은 탄탄한 조형미를 앞세워 화려한 색채로 봄 풍경을 수놓았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날마다 땡볕을 마주하며 화구 앞에 앉아 붓질하는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의 작품도 걸린다. “작은 물방울 한 점을 그리는 것은 사랑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는 김 화백이 말이 실감난다.

지난해 작고한 이두식 화백의 작품도 세 점 나온다. 특유의 무정형 형상과 즉흥적 필치로 마구 짜낸 물감으로 거칠게 찍어 바른 작품에서는 시공을 초월한 동양적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느낄 수 있다. 50대 스타작가 오치균 씨의 ‘감’ 시리즈는 유년 시절 경험한 시골집 감에서 쏟아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이 밖에 강력한 필선과 대담한 구도 안에 인간적 우수를 담은 권옥연의 풍경화, 한국의 ‘로트랙’으로 불리는 손상기의 작품, 우주의 에너지를 붓끝으로 잡아낸 과훈의 추상화, 유년 시절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여인과 꽃으로 묘사한 송지혜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이번 전시를 기획한 한경갤러리 측은 “1945년 8·15 해방 이후 한국 화단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회”라며 “단순한 상업 전시보다는 예술을 통해 시대정신을 표출하는 마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