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노동시장 자유 세계 135위라는 헤리티지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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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내부 식민지화한 귀족 노동세력이 문제테리 밀러 헤리티지재단 국제무역경제센터장이 “한국의 경제자유지수는 높아졌지만 노동시장지수는 세계 평균에서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제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경-헤리티지재단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들이다. 그는 특히 “고용시장이 상당히 경직돼 있어 기업 환경 변화에 따른 유연한 고용과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헤리티지재단에서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178개국 중 29위를 차지했지만 노동시장지수는 최하위권인 135위에 머물렀다.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은커녕 중국보다 노동시장이 비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이 지수는 노동시장을 규제하는 각종 법과 제도를 계량화해 만든 수치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 의무화나 해고 금지 제도, 근로 시간 규정 등 규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점수가 높아진다. 해고비용도 당연히 포함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노동시장의 자유가 없다는 점에서 노동 문제의 심각성이 읽힌다. 실제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기형적 이중구조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정리해고 또한 그 요건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에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연공제 폐지 없는 60세 정년 의무화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시장 유연성과 동떨어진 제도만 생겨나고 있다.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한 한국 근로자들의 평균임금이 OECD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도 이런 제도가 만든 산물이다.이런 규제투성이의 노동시장이 이뤄진 것에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겠지만 오히려 대중민주주의의 무차별적인 여론추종, 다시 말해 한국의 독특한 정치문화에도 그 원인이 컸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성장과 함께 이뤄진 노조의 정치권력화는 외국 학계에서도 주된 연구 대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절적 이중구조를 형성한 것도 특히 노조의 책임이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근로자와 실업자들을 내부 식민지화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최근에는 소위 귀족노조의 고용 세습까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단체협약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600여 기업 중 30%인 180여곳의 단체협약에 직원 가족 특혜를 보장하는 조항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현대판 음서제도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규제가 많을수록 암시장이 늘어나고 도덕적 해이가 판을 친다는 것은 경제교과서 그대로다. 노조라는 정치권력이 결국 규제와 부패를 싹트게 하고 고용장벽을 만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노·사·정 대표 오찬에서 노동시장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면서 개혁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민노총이나 전교조 전공노 등 노동단체들은 이런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벌써 4월 총파업을 운운하며 공공연히 사회적 협박을 내놓고 있다.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혁파하고 강고한 정규직 노조를 깨지 않으면 일자리 창출도 비정규직 처우개선도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