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생산·소비 부진, 재고만 쌓이고…영남우유, 50년 역사 접고 '눈물의 폐업'

산업 리포트

'1+1' 등 판촉행사에도 우유 소비량 지속 감소
분유 재고 사상 최대 수준
대형 우유업체들도 작년 수백억대 적자
우유 업체들은 사상 최고 수준의 재고 부담과 소비 부진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우유가 빼곡히 진열돼 있다. 한경DB
경북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우유 업체인 영남우유가 문을 닫았다. 지난해 5월 공장 가동을 중단한 영남우유는 우유 생산 설비와 공장 등을 모두 처분한 뒤 지난달 최종 폐업처리 됐다. 영남유업의 폐업은 재고 부담과 판매난에 따른 것으로, 국내 우유업체의 위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남우유는 1960년대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 낙농산업 진흥정책에 따라 남양유업, 비락, 해태유업 등과 함께 설립된 백설유업사(1964년 설립)가 모태다. 그 전까지 유업체는 축산농협 형태로 운영되는 서울우유협동조합 한곳뿐이었다. 김문조 영남우유 회장은 우유를 병에 담아 판매하는 기술에 관한 특허를 앞세워 회사를 키워나갔다. 1974년 영남우유로 이름을 바꿨고 1980년대에는 공장을 두 개로 늘렸다. 경북 중심의 판매망도 부산, 경남, 제주지역으로 넓혔다.

사세는 2000년대 들어 기울었다. 김 회장이 별세한 후 2012년부터 회사가 적자 기조로 돌아섰다. 김 회장의 부인인 강옥남 영남우유 대표가 회사를 이어받았지만 2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지난해 폐업을 결정했다. 유가공협회 관계자는 “높은 원유가, 소비 부진으로 인한 재고 부담 등이 이어지면서 50년 가업이 문을 닫게 됐다”며 “다른 중소 유가공업체들도 제2의 영남우유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영남우유를 비롯한 유업체들은 2012년부터 이어져 온 원유 과잉생산에 따른 재고 부담으로 큰 애로를 겪고 있다. 낙농진흥회와 유가공협회에 따르면 2011년 1648t에 불과했던 분유 재고량은 2012년 7469t으로 4.5배 증가했다. 지난해엔 이보다 2.4배 많은 1만8484t을 기록했고 올 들어서는 2만t을 돌파, 1962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유업체들은 남는 원유를 말려 분유 상태로 저장하고 있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기업 규모가 큰데도 가공·보관 비용으로 인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L당 1088원인 원유를 분유로 만들면 약 15%의 가공비용이 추가되고 보관비까지 들지만 저장된 분유의 판매가격은 500원대에 불과하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보관비를 들여가며 분유를 저장해뒀던 것은 재고자산으로 분류되는 것이 파는 것보다 재무제표상 이득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재고를 처분하기도, 계속 보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업체들은 재고를 줄이기 위해 우유 판촉 행사를 늘렸지만 이 역시 별 효과가 없었다. 대형마트 등 유통채널에서 판매한 ‘1+1 기획팩’도, TV광고를 통해 진행한 홍보 캠페인도 소비를 늘리지 못했다.

지난해 흰우유 소비량은 135만6301t으로 전년보다 3만5903t 줄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4주간 우유 구매량’은 5.3㎏으로 전년 대비 4.7% 감소했다. 평균 구매 금액도 1만3414원으로 3.3% 줄었다. 우유를 대체할 건강음료가 많이 나온 데다 우유를 많이 마시면 심장병 등으로 사망할 위험이 높아지고, 여자 어린이의 경우 성조숙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것이 소비심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국내 대표적인 우유업체 중 하나인 남양유업은 작년 3분기까지 195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올 들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1분기 원유 생산량은 56만t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흰우유 중국 수출 등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우유 소비를 늘리겠다는 계획이지만 과잉 생산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성장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