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유지 위한 무분별한 '복지 확대'…'빚 폭탄' 키운 그리스, 국가부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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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오해와 진실앞다퉈 복지확대 경쟁
반면교사 삼아야 할 복지파탄 그리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대학 못간 학생 나랏돈으로 해외유학
선거 앞두곤 해외거주자에 무료항공권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 집권 8년
국가부채비율 28%→80% ‘폭증’
정권 넘겨받은 신민당도 가세
빚으로 해결하다 위기 키워
유로존 가입 후에도 국채발행 ‘빚 잔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 ‘휘청’
재정긴축·경제 구조조정 못해…국가부도 ‘시한부 운명’ 추락지난달 24일 구제금융이 4개월 연장됨에 따라 그리스는 적어도 6월 말까지는 국가 부도를 면할 수 있게 됐다. 그리스는 2010년 5월부터 2차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24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었다. 이 구제금융이 2월 말로 끝나게 됐는데 이번에 연장된 것이다. 만일 6월 말 이전에 유로존의 추가 유동성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리스는 결국 국가 부도를 맞게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리스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를 실현하며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남긴 위대한 역사를 지닌 국가다. 그런 그리스가 현대에 와서 경제적, 정치적 파탄을 상징하는 국가가 됐다. 그리스는 잘못된 제도를 도입할 경우 국가가 어떻게 실패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그리스의 비극은 1981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사회당(PASOK)이 집권하면서 시작됐다. 사실 그리스는 1929년부터 1980년까지는 비교적 우량한 국가에 속했다. 이 기간 쿠데타와 독재, 내전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2%에 달했으며, 1981년 EU 회원국으로 가입할 당시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8%, 재정적자는 3% 미만이었고, 실업률도 2~3% 수준인 건실한 국가였다. 이런 국가가 파판드레우의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1981년 총리에 취임한 파판드레우는 즉각적으로 연금과 임금을 대폭 인상했고, 의료보험을 확대하며 그리스 포퓰리즘의 토대를 구축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연금이 많을수록 돈이 많이 돌아 자기가 이끄는 당인 사회당이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용할 사람도 별로 없는 시골과 오지에 많은 병원과 학교를 세웠다. 이런 복지프로그램은 돈이 많이 들었다. 그는 그 비용을 EC(유럽공동체·EU의 전신)로부터 빌리거나 보조를 받아 충당했다. 그 결과 파판드레우 집권 8년 사이 그리스의 국가 부채 비율은 GDP의 28%에서 80%로 대폭 증가했다. 지금은 175%에 달한다.파판드레우 총리가 목표로 삼은 것 중 하나가 노동자 지위 향상이었다. 그는 노동자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조 편향적 입법을 추진하며 파업권을 보장했다. 그러나 노동자 임금은 급격하게 상승했지만 생산성은 떨어졌다. 노동자들은 경영자에게 적대적이었다. 자본주의적 착취라고 비난하며, 하찮은 이유를 들어 툭하면 파업했다. 특히 외국 기업들에 적대적이었다. 외국 기업들을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착취자로 인식했다. 외국인 투자가 고갈됐을 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 기업들이 그리스를 떠나갔다. 경제가 쇠퇴해 갔다.
사회당은 집권 기간(1981~1989년)에 자신들의 지지자들에게 많은 특혜를 줬다. 그리스 국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 해외유학을 보내줬고, 주말 여행비를 대줬으며,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투표를 위해 그리스로 오도록 무료 항공권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일을 하는데 상당히 많은 국가 돈을 갖다 썼다. 국가 돈이 당의 정치자금과 개인계좌로 빼돌려졌다.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정치인들은 무감각했으며, 의원들은 부와 특권을 누렸다.
이런 부정부패와 경제 쇠퇴로 인해 1991년 정권이 신민당(New Democracy)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신민당도 국가를 개혁하기보다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했다. 복지를 줄이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내놓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회당이 참으로 나쁜 정치적 유산을 남긴 것이다. 신민당은 복지정책을 더욱 확대하는 쪽을 선택했다. 노동조합과 결탁하고 지지자들을 공무원으로 고용하거나 지지한 집단을 위해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와 법을 제정했다. 1981년부터 2009년까지 양 정당은 경쟁적으로 복지 포퓰리즘, 정치적 후견주의 정책들을 제공했다. 오늘날 그리스의 비극은 양 정당이 경쟁적으로 제공한 이 포퓰리즘 정책들의 결과다.그리스에서 공공부문은 신(神)의 직장이다. 공공부문 근로자는 퇴직 후 연금액이 퇴직 시 근로소득의 100~110%를 받기도 한다. 연금제도는 일반적으로 민간 근로자보다는 공공부문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민간 부문 근로자와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며 지내는 공공 부문 근로자 간에는 보이지 않는 시기와 질투가 존재한다. 쓸데없는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예전에는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이제는 2~3명이 한다. 철도를 유지하는 것보다 승객들에게 목적지까지 차라리 택시비를 주는 것이 낫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온다. 이런 비정상적인 경제가 유지될 수는 없다.
사실 그리스 위기는 2001년에 찾아왔다. 그리스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고 경제체질을 개선해 늘어나는 재정지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유로존 가입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다시 정권을 잡은 사회당은 국가 부채 데이터를 하향 조작해 유로존에 가입했고, 유로존 가입 덕택에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하며 재원을 마련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스가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과 같은 유로존의 건실한 국가가 그리스와 같은 부실한 국가를 암묵적으로 보증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의 유로존 가입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를 연장시키며 오히려 악화시킨 독이 됐다. 그리스는 그렇게 마련한 돈을 저축, 투자, 인프라 구축, 제도개혁 등에 지출한 것이 아니라 소비 지출에 썼다. 그 결과 1인당 국민소득이 2008년 3만2000달러, 민간 지출이 EU 평균보다 높은 12%에 달했다. 그 덕분인지 그리스는 인간개발지수와 삶의 질 지수에서 세계 2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것은 속 빈 강정일 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늘어난 부채를 감당할 수 없게 돼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고 구제금융을 받게 된 것이었다. 남의 돈으로 ‘파티’를 즐긴 결과였다.
어떤 조직이나 개인의 재정상태가 어려워지면 지출을 줄이고 고통을 감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위축돼 국가재정이 어려워지면 정부와 국민들은 씀씀이를 줄이고 그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2차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그리스는 재정 긴축과 경제 구조조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리스 국민들은 여기에 불만을 표하고, 그 불만 앞에 정치권은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리스가 주는 교훈은 경제적 번영은 결코 정부의 차입과 지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포퓰리즘 정치는 결국 국가를 쇠퇴시키고 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돌이키기 힘든 것이 바로 포퓰리즘 정책이다. 우리가 정말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일이다.
뿌리깊은 정치적 후견주의
공공부문 일자리 늘려 친인척·지지세력 채용
그리스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정치적 후견주의다. 정권을 잡은 정당은 지지자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혜택을 줘 왔다.
그 첫 번째가 공공 부문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었다. 정권을 잡은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친인척과 지지세력을 위해 공공 부문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그 결과 공무원이 약 100만명에 달해 전체 노동인구의 27%를 차지하고 있다. 늘어난 공무원은 필연적으로 관료제를 낳았고, 불필요한 규제가 양산됐다. 법이 얼마나 많고 복잡한지 특정 법을 개정하려 해도 쉽지 않을 정도다. 관련법들을 조사하는 데 수개월이 걸려 그동안 개정으로 손해볼 것으로 생각하는 집단이 개정에 반대하고 투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특정 그룹에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규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수도 아테네의 야채시장에 있는 하역노조가 단적인 예다. 이 노조는 100명 정도의 조합원으로 구성돼 있다. 농부들이 야채를 팔기 위해 트럭에 싣고 오면 다른 사람은 하역할 수 없고 이 노조 조합원들만 하역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역비가 법으로 정해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실제로 하역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아니고 농민들이 직접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그렇다고 농민들이 노조원에게 하역비를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농민들은 하역작업을 하지 않는 이 노조 조합원들에게도 하역비를 따로 줘야 한다. 농민들이 하역비를 이중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이 부담이 싫어 노조원이 하역해 주기를 바라며 그들을 기다리다가는 야채의 신선도를 보장받을 수 없다.
이외에도 2011년 미국 케이토(Cato)연구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그리스에는 정치적 지지자들이 이익을 챙기게 하는 다양한 부과금들이 있다. 예를 들어 선박 여객 요금 중 10%가 부두 노동자들의 연금재원에 들어가도록 돼 있으며, 군에 납품할 때 받는 돈의 4%는 군인연금에 할당된다. 또 축구 경기 입장권 가격의 25%는 경찰연금으로 들어가도록 돼 있다. 이런 종류의 부과금이 10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정치적 후견주의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개인과 집단의 지대추구 행위가 만연했고, 수혜집단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과 농성을 일삼았다. 부패도 만연해 있다. 탈세는 기본이다. 탈세액이 연 2000억~3000억유로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2009년 재정적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리스에서는 수영장이 딸린 집이 부의 상징이다. 국세청은 탈세 여부를 적발하기 위해 종종 수영장 시설을 확인한다. 2009년 아테네에서 364명만이 집에 수영장이 있다고 신고했는데 위성사진 촬영 결과 1만6974개나 됐다고 한다. 정직하게 신고한 사람은 2%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비생산적인 행태로 인해 그리스 경제는 쇠퇴해 갔다. 재정적자가 누적됐으며 국가부채도 천문학적으로 늘어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경제 성장과 번영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으로부터 나온다. 자발적 거래, 저축, 투자, 생산, 기업가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시장을 보호하는 치안과 법적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스 사태의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구조 개혁을 하며 시장 친화 정책을 쓴다면 현재의 곤경에서 탈출할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의 시작은
1981년 총리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국민 원하는 것 다줘라” 포퓰리즘 남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1919~1996)는 그리스 최초의 사회당 총리다. 1981~1989년, 1993~1996년 총리를 지냈다.
그는 1919년 정치가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의 아들로 키오스 섬에서 출생해 1996년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아테네대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939년 독재자 이오안니스 메타크사스 정권하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잠시 투옥되기도 했다. 석방 후 미국으로 건너가 1943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4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미국 해군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이후 미네소타대와 노스웨스턴대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는 경제학과 학과장까지 지냈다. 그가 쓴 논문은 경제학의 최고학술지인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1949년, 1963년)와 이코노메트리카(1953년)에 실릴 정도로 경제학자로서 제법 평판이 높았다.
그는 1963년 부친이 총리로 선출되자 그리스로 돌아와 부친이 이끄는 중도연합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뛰어들었다. 정치활동 중 군부의 쿠데타로 체포돼 8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석방 후에는 외국을 떠돌며 망명생활을 했다. 1974년 그리스 군사 독재정권이 붕괴되자 귀국해 좌파정당인 범그리스 사회주의운동(PASOK)을 결성했다. 그리고 1981년 선거에서 의석 300석 중 172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며 총리에 취임했다.
취임 직후 그는 내각에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것이 그리스 포퓰리즘과 비극의 시작이었다. 정치인들은 단기간에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지출을 늘리고 싶어 한다. 유권자들도 정부의 퍼주기를 좋아한다. 정부가 주는 돈을 수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돈이 자신의 호주머니가 아닌 정부나 다른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정부가 퍼준 돈은 언젠가 국민들이 갚아야 할 돈이다. 케인스는 대공황을 처방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리지 않으면 “장기에 우리 모두는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정부 지출을 늘리면서 경제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장기에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