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의 기회'…7개 대기업 불꽃 경쟁

7월 서울 시내 사업자 선정, 공항 면세점보다 수익성 높아
한국의 면세점 시장은 매출 규모 세계 1위다. 지난해 8조 원을 넘어선데 이어 올해 10조 원 돌파가 예상된다. 최근 3년간 평균 14.7% 성장했고 특히 지난해에는 21.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 시내 면세점은 그야말로 ‘황금 알’ 시장으로 꼽힌다.

관세청은 6월 1일까지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에 대한 사업권 신청을 받아 7월 중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3곳 가운데 2곳은 대기업에, 1곳은 중소기업에 돌아간다. 눈여겨볼 점은 대기업 참여가 가능한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 선정이 ‘15년 만’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15년 만에 찾아온 ‘황금의 기회’를 노리고 무려 7개 대기업이 출사표를 던졌다. 시내 면세점은 높은 임차료로 적자에 허덕이는 공항 면세점보다 수익성이 높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 면세점의 매출액은 약 5조4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약 32.2% 늘었다. 이는 전체 면세점 매출액 증가율(21.6%)보다 높은 수치다. 반면 공항(출국장) 면세점 매출액은 2조5000억 원으로 약 5.9%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매출액 32%나 늘어

현재 참여 예상 업체는 기존 서울 면세점 운영 업체인 워커힐면세점(SK네트웍스)·신라면세점(호텔신라)과 새롭게 경쟁에 참여한 현대백화점·신세계·현대산업개발·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등이다. 여기에 그동안 시내 면세점 입찰 참여에 소극적이던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이 참여를 선언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시장은 이미 불꽃 튀는 한판 승부가 예고되는 상황이다. 각자 체제로 움직이던 신라면세점과 현대산업개발이 갑작스레 ‘적과의 동침’을 예고해 입찰 경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12일 신라호텔과 현대산업개발은 공동 출자해 ‘HDC신라면세점’을 설립하고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취득한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이들은 용산 현대아이파크몰 내 4개 층에 최소 1만2000㎡ 이상의 매장을 확보해 국내 최대 규모의 시내 면세점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 최대 규모는 서울 잠실에 있는 1만1000㎡ 규모의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다. 두 기업은 용산에 국내 최대 규모의 면세점을 만들어 중국인 관광객으로 활성화된 일본 도쿄의 아키아바라처럼 용산 전자상가를 부활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신라면세점 측은 아이파크몰의 입지적 강점과 신라면세점의 면세점 운영 노하우가 결합해 최대 시너지를 거둘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현대아이파크몰의 주차장을 사용해 관광버스 주차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업계 역시 뜻밖의 한 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신라면세점과 현대산업개발의 면세점 공동 진출 소식에 두 기업의 주가마저 올라가던 찰나에 롯데면세점이 입찰 참여 소식을 알렸다.

롯데면세점은 국내 면세점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의 1위 업체다. 롯데면세점은 서울에서 이미 3곳의 면세점(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롯데백화점 월드타워점, 롯데월드 잠실점)을 운영하고 있어 ‘독점 논란’을 의식해 6월로 예정된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 유치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오는 12월 서울 소공동점과 잠실점의 면세점 사업권이 동시에 만료되는 시점에서 다시 사업권을 따낼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지면서 이번 입찰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롯데면세점 한 곳의 연매출이 2조 원에 이르는데, 그중 한 곳이라도 탈락하면 롯데로선 타격이 커 위기에 미리 대비하는 모습이다. 롯데는 최종 후보지로 동대문 롯데피트인, 김포공항 롯데몰, 신사동 가로수길 등 3곳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포공항은 베이징~상하이 셔틀 노선과 연계성이 좋고 동대문은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많다는 점이 강점이다. 롯데면세점 측은 “지난 2월 인천공항면세점 입찰과 제주 시내 면세점 사업권 경쟁에서 모두 승리해 면세점 독점 논란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면서 “6월 서울 시내 면세점 쟁탈전에서 떨어진 대형 유통 업체들이 올해 12월 있을 2개(소공동 본점과 잠실점)의 서울 면세점 사업권에 나설 것이 분명해 이 두 곳의 수성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롯데 소공동·잠실 사업권도 12월 만료

2013년 관세법이 개정되면서 면세점 사업권이 만료되면 연장이 불가능하고 새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6월의 서울 시내 면세점 쟁탈전은 12월에도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롯데면세점과 HDC신라면세점이 신경 써야 할 업체는 또 있다. 유통 라이벌인 ‘신세계’다. 유통 공룡으로 막강한 ‘바잉 파워’를 갖춘 신세계는 현재 신규 면세점 자리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있는 명동·남대문,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이어진 강남점이 있는 반포를 저울질하고 있다. 만약 신세계가 명동에 진출한다면 소공동 면세점의 시장 수요가 분산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또한 신세계는 부산 신세계면세점(2012년)과 김해국제공항 면세점(2014년)을 통해 면세 사업 능력에 대한 검증도 받았다. 9월에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개장을 앞두고 있다. 신세계는 장기적으로 롯데와 신라에 맞서는 면세점 시장의 ‘빅 3’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 입점한 SK네트웍스의 워커힐면세점도 이번 입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력 후보지로 SK 건물들이 있는 도심 지역과 신촌·홍대 등지를 보고 있다.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도 시청 앞 플라자 호텔 뒤 한화 사옥을 면세점 입지로 검토 중이다.

신라면세점과 손잡은 현대산업개발을 제외하고 유일한 신규 진입 업체로 승부를 펼치는 현대백화점은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입지로 선정했다. 현대백화점은 무역센터점 2개 층을 리모델링해 시내 면세점 사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존 면세점 대부분이 강북에 집중돼 있어 강남에는 고급 소비 수요를 채워 줄 면세점이 없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다만 현재 참여 업체들이 내세우고 있는 입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각 업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전략을 짜내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워커힐면세점은 국내 면세점에서는 유일하게 카지노와 연결돼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주차 시설이 넓다. 이런 차별화된 장점과 입지 조건 등을 잘 버무려 전략을 짜내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라면세점이 처음 장충동에 자리 잡았을 때만 해도 그들이 국내 2위, 글로벌 8위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들의 시장 경쟁 상황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내 면세점 시장은 유커의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씀씀이가 큰 유커가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만큼 유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이 성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롯데면세점 대표와 한국면세점협회장을 지낸 최영수 리인터내셔널 특허법률사무소 고문은 “유커 붐이 일본인처럼 갑자기 끊긴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안의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어 말했다. 이어 “외형 확장보다 질적 개선에 신경 써야 한다”면서 “쇼핑과 놀이·엔터테인먼트·관광·체험 등을 연계한 다양한 관광 콘텐츠 개발을 통해 국내 면세점이 경쟁력을 키워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면세점 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한국이 세계 1위 면세점 시장이고 외국 관광객이 한국 방문을 방문했을 때 제1 활동이 쇼핑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광업 7대’ 업종엔 면세가 포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면세점은 정부의 관광진흥기금 지원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이에 따라 면세점 업계 관계자들은 면세 산업이 신성장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12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