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업무, 다른 판결' 산업계 혼란…줄소송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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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사내하도급 제각각 판결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는 국내 대표적인 타이어 회사다. 일반인이 보기엔 비슷한 타이어를 만든다.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의 업무도 비슷해 보인다. 정규직 근로자뿐만 아니라 하도급업체에서 나온 사내하도급 근로자들도 그렇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광주고등법원은 정규직 지위 확인소송을 제기한 금호타이어 사내하도급 근로자 132명에 대해 ‘전원 금호타이어 소속’이라고 판결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같은 소송을 낸 한국타이어 사내하도급 근로자 4명에 대해 ‘전원 적법한 도급’이라고 판시했다.
◆같은 기준으로 다른 판결‘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업종을 경비·청소 등 32개 업종으로 제한하고 있다. 제조업 등 금지 업종에서 파견근로를 활용하면 본사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 의무를 지운다. 경기 변동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들은 반제품 운반이나 물류 등 비교적 단순한 업무에도 파견근로자를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내하도급을 쓰고 있다.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업체 공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내하도급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파견근로와 사내하도급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금호타이어 및 한국타이어 소송 사건처럼 법원마다 엇갈린 판결이 나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두 법원은 모두 사내하도급과 파견근로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본사(원청업체)가 사내하도급 근로자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본사와 하도급업체 근로자가 유기적인 작업을 하는지 등 비슷한 조건을 제시했다. 소송을 제기한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의 업무도 반제품 운반·절삭, 물류, 윤활제 도포, 타이어 검사 등으로 비슷했다.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한국타이어가 작성한 업무계획서에 따라 작업했다고 해도 적법한 사내하도급”이라고 봤다. 반면 광주고법은 “금호타이어의 업무계획서에 따라 일했기 때문에 파견근로”라고 판결했다. 같은 기준으로 비슷한 사업장의 사내하도급에 대해 판단했지만,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서울중앙지법은 “타이어 생산공정은 공정 간 유기성이 떨어진다”고 봤지만, 광주고법은 “하도급업체의 작업장소가 정규직 근로자들과 다소 떨어져 있다고 해도 파견근로”라고 판시했다.
또 서울중앙지법이 “한국타이어가 하도급업체에 사무실과 생산설비를 무상 지원하고 연차휴가수당을 지급했다 해도 파견으로 볼 수 없다”고 했지만, 광주고법은 “금호타이어가 하도급업체에 물적 시설을 제공하고 근로자 복지후생비도 지급했기 때문에 파견근로”라고 판단했다.◆“사업장에 가보고 판결해야”
기업들이 불완전한 제도로 인해 통상임금에 이어 사내하도급까지 소송전에 휘말리면서 타격을 입고 있다고 산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슷한 사건이 재판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판결 때문에 소송이 남발되고 하급심에서 지더라도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면서 불필요한 비용과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법원이 사내하도급 사건을 심리하면서 근로자 개인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 금호타이어 및 한국타이어 사건에서도 원고들의 업무가 각각 달랐지만 모두 같은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9월에도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자동차 934명, 기아자동차 468명의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업무와 상관없이 전원 정규직으로 인정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