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엔저 쇼크, 대미 외교 실패의 결과다

바닥 모르게 추락 중인 일본 엔화 가치가 지난 2일 달러당 125엔대까지 내려갔다. 장중이기는 하지만 125엔이 깨진 것은 12년6개월 만이다. 원·엔 재정환율도 100엔당 892원대까지 밀리며 7년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원·엔 환율은 통상 10 대 1을 균형으로 봤던 점을 감안하면 우려할 만한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엔저는 우리의 주력 수출상품에는 직격탄이다. 해외시장에서 우리나라 상품과 일본 상품이 경쟁을 하는 품목이 50% 정도나 된다는 점이 잘 말해준다. 자동차 조선 유화 등이 모조리 영향권이다. 5월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10.9% 줄며 금융위기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대 감소율을 보인 것만 봐도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현대자동차 주가가 지난 2일 하루에만 무려 10.36%나 급락한 것도 엔저가 직접적 원인이었다. 현대차 주가는 어제도 2.17% 내린 13만5500원에 마감해 지난 3월 중순의 고가 대비 27%나 빠졌다.최근 엔저 가속화에 불을 댕긴 것은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연내 금리인상 발언이다. 그렇지 않아도 약세던 엔화 가치는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하락세가 더 가팔라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환율은 경제현상만을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나라가 자국 통화에 개입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환율전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문제는 일본의 노골적인 엔저를 미국 등 선진국들이 묵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4월과 10월 두 차례, 그리고 다시 지난 4월 한국에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하라고 압박을 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미국이 한국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좀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한국 외교가 중국과는 가까워진 반면 일본은 물론 미국과도 소원해진 상황과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환율은 수출에 여전히 중요하다. 환율은 경제뿐 아니라 외교와 정치의 산물이다. 원화 강세의 불편한 진실이다. 정부가 이 사실을 모르기야 하겠는가.